정의
조선시대 종친 윤산군 이탁의 묘에서 출토된 묘지(墓誌).
개설
내용
묘지명에 따르면, 윤산군 이탁은 7살이 되던 1468년(세조 14)에 보신대부(保信大夫)의 품계를 받아 윤산부정(輪山副正)이 되었다. 이후 1476년(성종 7)에 창선대부(彰善大夫), 1499년(연산군 5)에 명선대부(明善大夫), 1541년(중종 36)에 정의대부(正義大夫)와 윤산군에 봉해졌으며, 1543년(중중 38)에는 중의대부(中義大夫)에 올랐다. 또한 중중반정 후에는 신수근(愼守勤)과 가까운 친척이라는 이유로 김해로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8월에 풀려나기도 하였다.
윤산군 이탁은 평소 조용한 성품으로 술을 즐기지 않았고, 꽃을 좋아하는 반면 활쏘기에 능한 면모를 지녔다. 부사정(副司正) 신석녕(申錫寧)의 딸과 혼인하여 두 아들을 두고, 측실에서 다섯 아들을 두어 모두 일곱 명의 아들을 두었다. 1547년(명종 2) 정월 19일 86세의 일기로 생을 마쳤고, 광주(廣州) 정도(正道) 의곡리(義谷里)에 묻혔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국가유산청(www.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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