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구마라집(鳩摩羅什)이 번역한 묘법연화경 7권본의 사경으로, 쪽빛 물감을 들인 감지(紺紙)에 금물감으로 변상도를 그리고 본문은 은물감으로 글을 썼다. 병풍처럼 펼쳐볼수 있는 절첩(折帖) 형태로 접었을 때의 크기는 세로 42cm, 가로 14.2cm이며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뒷면에 붉은 글씨로 ‘廣德寺’라 쓰여있어 다른 권과 마찬가지로 광덕사에 소장되어 있던 같은 본임을 알 수 있다. 이 법화경의 권3의 존재가 최근 알려졌는데, 현재 소장처는 각기 다르지만 광덕사 묘법연화경 사경의 완질본으로 확인되었다. 권7의 사성기(寫成記)에 의해 비구 덕명(德明)이 돌아가신 모친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세종 4년에 발원하였음을 알 수 있다. 권1, 권3, 권7에 각기 내용이 다른 시주질이 기록되어 있어 여러 사람들이 참여하여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각 권의 앞뒷면 표지에는 금니의 2조선으로 테두리를 두르고 그 사이에 당초문을 넣었다. 이 곽 안에 보상화(寶相華) 4송이가 세로로 정연히 그려졌는데 각각의 꽃을 당초가 감싸고 있으며, 중앙에 경의 제목을 넣었다. 표지를 열면 본문에 앞서 변상도가 전개된다. 변상도는 고려시대 사경변상도의 보편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다. 금강저(金剛杵)와 법륜(法輪)을 교대로 배치한 난곽으로 화면을 정의하고 그 내부에 변상도를 그렸다. 화면의 오른쪽에는 석가모니의 설법장면, 왼쪽에는 권3의 내용에 대한 변상장면이 전개된다. 권3은 제5약초유품(藥草喩品), 제6수기품(授記品), 제7화성유품(化城喩品)으로 구성되어 있다.
석가모니 설법장면에서 청문중은 권2와 마찬가지로 모두 비구들이다. 그 윗쪽의 삼존불과 예배자들이 그려진 장면은 수기품에서 설한 가섭(迦葉), 수보리(須菩提), 가전연(迦栴延), 목건련(目犍連)의 수기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왼쪽 윗부분에는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성곽이 있는데, 이는 화성유품의 열반법에 대한 비유를 그린 것이다. 그러나 성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생략되었다. 그 아래에는 나무와 집, 구름에 싸인 큰 용이 입으로 비를 내리고 있고 비옷을 입은 농부들이 집으로 향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이는 약초유품의 비유를 그린 것으로, 비가 내리면 약초와 나무들이 그 나름대로 모두 자라게 되는데 작은 약초는 범천왕(梵天王), 중간 약초는 연각승(緣覺僧), 큰 나무는 보살, 그리고 비는 붓다의 설법을 비유한 것이다. 설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고루 내리지만 듣는 이에 따라 제각기 다르게 들리게 된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화면의 아래에 그려진 음식이 차려진 탁자와 음식을 먹는 사람들은 수기품의 내용을 그린 것으로 붓다의 수기는 마치 주린 배로 헤메다가 대왕이 주는 성찬을 맛있게 먹는 것과 같다는 비유를 그린 것이다.
본문은 다른 권과 마찬가지로 상하금니쌍선(上下金泥雙線)을 긋고, 1절(折)에 6행(行) 17자(字)의 은물감으로 썼다. 서체는 단정한 사경서체이나 고려시대 사경의 서체 보다는 획이 굵고 예리함이 줄어든 모습이다.
고려후기 법화경사경의 전통을 계승한 조선초기의 사경으로 변상도를 갖춘 연대가 확실한 완질본이므로 사경서체와 변상도의 양상 등 조선초기 사경 연구에 훌륭한 자료로 평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