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구마라집(鳩摩羅什)이 번역한 묘법연화경 7권본의 사경으로, 푸른색의 쪽빛 물감을 들인 감지(紺紙)에 금물감으로 변상도를 그리고 본문은 은물감으로 글을 썼다. 병풍처럼 펼쳐볼 수 있는 절첩(折帖) 형태로 접었을 때의 크기는 세로 42cm, 가로 14.2cm이며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각 권의 뒷면에 붉은 글씨로 ‘廣德寺(광덕사)’라 쓰여있어 이 절에 소장되어 있던 한 질(秩)임을 알 수 있으나 광덕사에서 제작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시기는 불확실하나 이 법화경 7권은 사찰에서 유출되어 각 권이 분리되어 유통되어왔다. 권1(보물, 1963년 지정)과 권7(보물, 2007년 지정)은 국립중앙박물관, 권2ㆍ4ㆍ5ㆍ6(보물, 1963년 지정)은 불교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권3(보물, 2007년 지정)은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왔음이 최근 알려졌다. 권7의 사성기(寫成記)에 의해 비구 덕명(德明)이 돌아가신 모친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세종 4년 발원하였음을 알수 있다. 권1, 권3, 권7에 각기 내용이 다른 시주질이 기록되어 있어 여러 사람들이 참여하여 제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권7은 제24묘음보살품(妙音菩薩品)에서 제28보현보살권발품(普賢菩薩勸發品)까지이다. 설법장면의 청문중 위쪽에 석가의 육계와 백호에서 뻗어나온 광명 안에 신전들이 그려진 것은 묘음보살품에서 광명을 놓아 수많은 부처님의 세계를 비추었다는 장면으로 보인다. 그 아래 이불병좌상(二佛幷坐像)이 표현된 보탑은 묘음보살이 다보불을 예배하는 장면이고, 보탑의 왼쪽 코끼리를 탄 보살은 보현보살권발품을 그린 것이다. 화면의 왼쪽에는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의 제난구제(諸難救濟)의 여러 장면들이 전개된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안전하게 허공에 떠 있는 사람, 바다에서 표류되어도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안전한 곳에 서 있는 사람, 뇌신(雷神)이 쏟아내는 폭우 아래에서 안전하게 우산을 쓰고 가는 사람, 호랑이나 뱀과 같은 사나운 짐승들에 쫓기는 사람들, 도둑을 만나 재산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사람, 몸둥이로 맞을 때 몽둥이가 부러지고, 쇠고랑과 사슬에서 해방되는 사람 등이 그려져 있다. 이는 중생들이 여러 가지 고통을 당했을 때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관음보살이 그 음성을 듣고 모든 고난에서 해탈케 해준다는 관음의 위력을 설한 장면이다.
그리고 설법도 난간 앞쪽에는 두사람이 서서 머리와 발 아래에서 각기 불과 물을 뿜어내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묘장엄왕의 아들인 정명과 정안(淨眼) 두 왕자가 신통력을 보여 아버지를 교화했다는 묘장엄왕본사품(妙莊嚴王本事品)의 이야기를 묘사한 것이다.
발원문에 의해 영락(永樂) 20년인 세종 4년(1422)에 제작된 사경임을 알 수 있다. 발원자는 비구 덕명(德明)이고, 발원문은 상엄(尙嚴)이 지었으며, 많은 시주자들에 의해 사성되었다는 것도 밝히고 있다.
夫此經包盡萬法實相大乘之肝心也比(부차경포진만법실상대승지간심야비)
丘德明有志於法供養淸寫於余余亦丁母(구덕명유지어법공양청사어여여역정모)
憂樂爲之書嗚呼右師之心蓋與隨(우락위지서오호우사지심개여수)
喜檀那同歸樂域矣(희단나동귀락역의)
永樂壬寅冬月尙嚴識(영락임인동월상엄식)
永老(영노)
无壤(무양)
朴貴德(박귀덕)
金天(금천) 兩主(양주)
鄭仁遇兩主(정인우양주) 李安大(이안대) 兩主(양주)
姜个只兩主(강개지양주) 莫同(막동) 兩主(양주)
安衆伊兩主(안중이양주) 鄭豆彦(정두언) 兩主(양주)
高成吉(고성길) 兩主(양주)
菊花(국화)
李 崇智(이숭지) 兩主(양주)
前縣監李(전현감이) 崇禮(숭례) 兩主(양주)
鷄林郡夫人李 氏(계림군부인이씨)
開城郡夫人高 氏(개성군부인고씨)
鄭 氏(정씨) 兩主(양주)
前司正洪 氏(전사정홍씨) 兩主(양주)
前殿直李 氏(전전직이씨) 兩主(양주)
鷄林郡夫人李 氏(계림군부인이씨) 兩主(양주)
前護軍李 氏(전호군이씨) 兩主(양주)
施主(시주)
고려후기 법화경사경의 전통을 계승한 조선초기의 사경으로 변상도를 갖춘 연대가 확실한 완질본이므로 사경서체와 변상도의 양상 등 조선초기 사경 연구에 훌륭한 자료로 평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