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산신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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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고시마 옥산신궁 정면
일본 가고시마 옥산신궁 정면
공예
유적
일본 가고시마현[鹿兒島縣] 히오키시[日置市] 히가시이치키초 나가사토[東市来町長里] 에 있는 조선후기 조선인 도공들이 건립한 단군 관련 신사(神社). 사당.
이칭
이칭
옥산궁, 玉山宮, 단군신궁, 고려신, 다마야마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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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본 가고시마현[鹿兒島縣] 히오키시[日置市] 히가시이치키초 나가사토[東市来町長里] 에 있는 조선후기 조선인 도공들이 건립한 단군 관련 신사(神社). 사당.
개설

일본 가고시마현 히오키시 히가시이치키초 미야마(鹿児島県 日置市 東市来町 美山) 788번지에 소재하고 있으며, 조선인 도공이 세운 단군사당이다.

역사적 변천

임진왜란 때 박평의(朴平意), 심당길(沈當吉) 등의 도공을 비롯한 다수의 조선인이 사쓰마(지금의 가고시마현)에 끌려왔다. 이들은 도업(陶業)으로 생계를 영위하면서도 항상 고국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고국의 하늘에서 신암(神岩)이 날아온 것을 계기로 옥산궁을 창건하였다.

『옥산궁유래기(玉山宮由來記)』에는 옥산궁 창건 유래에 대해 “이들은 매년 봄과 가을에 주위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올라 먼 바다 위에 떠오른 고시기지마(甑島)의 섬 그림자를 바라보며 고향을 생각하며 망향의 아픔을 달랬다. 그러던 1673년 정월 어느 날 밤, 바다 저편에서 큰 불덩이가 날아들어 큰 돌(神岩) 위에 떨어졌다. 그 후 큰 돌은 소리를 내며 진동하고 밤마다 밝은 이상한 빛을 내며 하늘로 올라갔다. 이를 본 마을사람들은 두려워하며 점을 본 결과 조선 종묘의 신 단군이 마을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온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24성(姓)의 조선인 도공들은 1708년에 불덩이가 떨어졌다고 하는 자연석을 신의 몸으로 하여 조선의 건축 양식으로 사당을 창건하고 옥산궁 혹은 고려신이라 불렀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내용

옥산궁의 주신이 단군인 것은 이들이 조선의 후예로서 고국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제문(祭文)과 축가(祝歌)도 그대로 우리말을 사용하고 있다. 제문의 주요 내용은 “대한(大韓)의 혼이여! 밝혀 보소서. 무엇 때문에 우리가 떠돌이 원객(遠客)이 되었나이까. 일하며 살아가는 우리를 사랑하고 도와주시옵소서. 무궁한 행복을 비나이다. 슬픔을 잊고 다 같이 힘을 모아 땅을 개간하고 농사를 지으며 누에를 치고 고기를 잡게 길이 길이 우리 모두를 수호하여 주시옵소서. 우는 새도 즐겁고 산에는 샘물 솟고 꽃이 피도록 우리 모두를 수호하소서.”라는 것이다.

1766년 2월, 사쓰마번의 번주 시마즈(島津)가에서는 이 옥산궁을 도기신(陶器神)으로 제사하고 신전을 조영했으며 이후 사당의 수리 일체를 번에서 하게 되었다.

1902~1903년 경, 니니기노미코토(瓊瓊杵尊: 아마데라스오미카미의 천손으로 규슈(九州) 남부에 내려와 일본왕실의 조상이 되었다)를 제사하고, 1909년에는 스사노오노미코토(素戔雄命)·다케미나가타노미코토(建御名方命)·우케모치노카미(保食神)·야사카히메노미코토(八坂比売命)를 제사하였다가, 1910년에는 쓰루기(剣)신사, 진수신사를 합사했다.

현재의 신전은 1917년에 개축한 것이다. 미야마(美山) 지구의 신앙 중심으로 항해와 어업의 수호신 혹은 도기 수호신으로 존중되고 있다. 음력 8월 14일 신내림의 신사(神事)와 순행(巡幸)제를 거행한다.

한편, 규슈(九州)섬 남단의 동쪽 반도인 가시야시 가사노바라초(鹿屋市 笠之原町)에도 동일한 옥산궁이 있는데, 이는 미야마의 인구가 늘어나자 후에 동 지역으로 이주한 일부 사람들이 세운 것이다.

참고문헌

『故郷忘じがたく候』(司馬遼太郎, 文春文庫, 1974)
『玉山宮由來記』(심수관가 소장, 1867)
『경향신문』(198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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