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6·25전쟁 당시 조국방위를 위해 참전한 642명의 재일동포 청년들로 구성된 의용부대.
개설
연원 및 변천
기능과 역할
642명의 재일의용병 중 52명은 전쟁 중에 사망했고 83명은 행방불명 상태이며, 265명은 미군의 순환배치 방침에 따라 1951년 1월부터 일본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나머지 242명은 1952년 4월 체결된 샌프란시스코조약에 따라 주권을 되찾은 일본이 입국을 거부함으로써 한국에 남게 되었다. 이들은 1952년 4월 부산에서 재일학도의용대(현재의 재일학도의용군 동지회)를 조직, 1953년 서울에 본부를 설치했다. 일본 태생이어서 본적이 없거나, 본적이 말소된 의용병 70여 명의 본적이 ‘종로구 인사동 34’로 된 것은 이 때문이다.
6·25전쟁 당시 사망자 52명의 유해는 한국인 주지가 운영하는 일본 도쿄 부근 사찰(대행사)에 안치되었다가 1963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생존 재일의용병은 1968년에 국가유공자로 인정되었다.
재일학도의용군 동지회에서는 1973년 국립묘지에 ‘재일학도의용군 위령비’를 건립하였고, 1979년에는 최초로 참전한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기 위해 인천 수봉공원에 ‘재일학도의용군 참전기념탑’을 세웠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在日義勇軍歸還せず:朝鮮戰爭秘史』(金贊汀, 岩波書店,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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