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하고, 한국과 일본 노동자 간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31년 3월 20일 아마가사키(尼崎)시에서 약 280여 명의 조선인 상인들이 참석하여 아시야(芦屋)의 영세 면(綿)공장 경영자 안태운(安泰云)을 초대 이사장으로 선출하여 조직되었다.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전협: 1928년 구 평의회계가 중심이 되어 결성됨) 한신지구지부의 니시무라 요시나리(西村好成)의 협력이 있었다.
본부는 아마가사키시 쓰키지(築地)에 두었고, 니시노미야(西宮), 나루오(鳴尾), 아시야(芦屋), 아오키(青木) 등에 지부를 두었으며, 전성기 때는 한신지방에 재류하는 조선인 450세대가 가입하고 있었다.
1938년 2월 19일 제9회 대회에서 한신구매조합(阪神購買組合)으로 개칭했으며, 명목상으로는 1941년 12월말까지의 존속이 확인되고 있다.
조합의 규약은 11장 34조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주된 조항은 생활필수품 구입·생산가공·기타 소비경제의 이익옹호를 목적(제2조)으로 하고, 조합원 자격자는 한신 간(阪神間)에 거주하는 노동자·농민·무산시민(제3조, 제4조)으로 하며, 출자금은 1구좌 5엔(제18조)이며, 이익금의 일부는 구좌 금액에 따라 배당(제24조)한다는 것 등이었다.
조합은 설립과 동시에 조선인이 집단 거주하는 지역에서의 쌀, 된장, 간장, 명태, 고추 등의 일용품을 시가보다 20~30% 정도 저가로 공급하는 등의 생활이익 확보에 주력하였다. 뿐만 아니라 『한쇼뉴스(阪消ニュース)』를 발행하거나 야간부를 마련하여 식자학급(識字学級) 경영을 통해 문자 보급 활동도 펼쳤다.
생활이익 확보 활동 이외에 특기할만한 활동으로는 재난구원활동을 들 수 있다. 1934년과 1936년의 한국 남부지방 수해 및 1934년 무로토(室戸)태풍에 의한 풍수해 구원활동에서도 다치바나(立花)촌에 응급 주택 25호를 건설하기도 하였고, 한국-일본 노동자 간의 연대 강화를 도모하기 위해 전협한신지구지부 활동에 조력하였다. 또한 야간부 설치와 주택문제 등의 대체에서도 민족적인 독자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활동면에서 보면, 다소 정치적인 내용도 있었으나, 재일조선인의 일상생활에 입각하여 그 이익을 도모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재일조선인의 소비조합 가운데 가장 오래 존속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좌익소비조합운동이 고조되는 가운데 일본 전체 사회운동의 흐름 속에서 출현하기는 했으나, 조선노총(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해체 후 전협에 조직되지 않았던 다수의 조선인노동자를 결집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