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공진단 ()

근대사
단체
1910년 미주지역(하와이)에서 군인양성을 목적으로 결성된 독립운동 단체.
정의
1910년 미주지역(하와이)에서 군인양성을 목적으로 결성된 독립운동 단체.
개설

1910년 7월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애국동맹단(愛國同盟團)을 조직하고 9개조의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이 결의안을 기초로 미주지역에서 군사를 양성하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조직하였다.

내용

대한공진단은 미주지역에서 군사를 양성하기 위해 각 지방에 양성소를 설립하고 청년동포로 하여금 의무적으로 병식훈련(兵式訓練)을 받게 하였고, 애국동맹단과 대동공진단 명의로 「무예장려문(武藝獎勵文)」을 발표하고 상무정신(尙武精神)을 강조하는 『체조요지(體操要旨)』를 보급하였다. 이 같은 상무주의의 풍조는 미주 각지로 퍼져 나갔으며, 국민개병(國民皆兵)을 주장하는 군사훈련이 실시되었다.

그 사례로 1909년 6월에는 유타(Ytah)주 솔트레이크시티(Salt Lake City)에 한인학생양성소를 설치하여 2년간 무관학교 과정을 가르치게 하였으며, 1910년 10월부터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동북지방에 위치한 클레몬트(Clairemont)학생양성소에서 군사훈련반을 조직하고 매주 3일 저녁 훈련을 실시하였으며, 캘리포니아주(California州) 롬폭(Lompoc) 지방에서는 의용훈련대(義勇訓練隊)를 조직하여 매일 저녁 훈련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그해 11월 캔자스시(Kansas市)에서는 소년병학원을 설치하여 매일 저녁 훈련을 하였고, 그해 12월부터는 와이요밍주(Wyoming州) 슈페리오(Superio)에서 청년병학원(靑年兵學院)을 설치하고 매일 저녁 훈련을 실시하였다.

의의와 평가

미주 각지의 한인들이 무예를 연습하는 것과 더불어 하와이지방총회에서는 1909년 12월 27일 임시대의회를 개최하여 하와이 각 지방에서 무예연습을 실시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 같은 결정에 따라 마우이(Maui)섬에 있는 한인들은 자체적으로 군복과 모자를 만들었으며, 1910년 4월 카우아이(Kauai)섬 4개 지방회가 연합하여 “대한 독립을 확립하기 위하여 죽기로써 맹서하고 무예를 확장”하기로 하여 미주 한인사회에서 무장항일운동을 이끌어가는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참고문헌

『재미한인오십년사』(김원용, Reedley California, 1959)
Korean Nationalist Activities in the United States and Hawaii 1900-1945(Kingsley K. Lyu, University of Washington, 1947)
집필자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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