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9월 27일에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김보배·박금우·곽명숙·이혜경·박정숙·이양순 등 경상도 출신의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여성단체로, ‘영남부인실업동맹회’로 개칭한 이후, 광복운동 후원에 공헌하였다.
1928년 독일 베를린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던 영남출신의 이극로(李克魯)가 하와이에 몇 주일 체류하며 국어강연을 하였다.
당시 하와이에는 사진신부 제도에 의해 경상도 출신의 여성들이 많이 이주하여 그를 환영하는 소리가 높았다. 이 때 이승만은 이극로를 멸시하여 국어를 강연하겠다고 한 회관 사용을 거절하였다. 또한 그는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경상도 놈이 박사면 아는 것이 얼마나 되며, 국어는 얼마나 안다고 강연하겠다는 것인가”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하와이의 경상도 출신 부인들은 1928년 9월 27일에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김보배·박금우·곽명숙·이혜경·박정숙·이양순 등의 발기로 영남부인회를 조직하였다.
영남부인회 회원들은 소규모 사업일망정 자기 사업을 경영하는 사람이 많아 가정의 경제권을 쥐고 있었고 교회와 사회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고 한다. 영남부인회 조직의 동기가 감정적이던 까닭에 그 후 그 명칭을 ‘영남부인실업동맹회’라 고치고, 목적을 실업과 사교에 국한하여 부인회 간의 충돌을 피하였다. 영남부인실업동맹회는 설립 이래에 실업에 대한 성과는 많지 않았으나, 광복운동 후원에 공헌이 있었다. 회원이 많았을 때는 150명에 달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