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에 만주의 유일한 조선인 자치기관으로 만들어진 한족총연합회를 1931년에 개편한 단체이다. 조선족 주민의 결속과 사회주의자 활동 저지를 주로 맡았다.
1928년에 만주에서 활동하였던 무장독립단체인 정의부(正義府)·신민부(新民府)·참의부(參議府)는 민족유일당을 조직하기 위해서 통합을 시도하였지만 실패하였다. 그 뒤 혁신의회(革新議會)와 국민부(國民府)로 분립되었다. 혁신의회는 좌우합작을 통해 민족유일당을 조직하고자 하였지만 역시 실패하였다. 이에 김좌진(金佐鎭, 1889∼1930)·정신(鄭信, 1898∼1931)은 북만주에 있는 군소 독립단을 규합하고 무정부주의단체인 흑색동맹파(黑色同盟派)의 남대관(南大觀)·전회관(田晦觀)·이강훈(李康勳)·이붕해(李鵬海, 1899∼1950) 등과 함께하여 한족총연합회를 조직하였다.
한족총연합회는 재만(在滿) 조선인의 정치적·경제적 향상·발전을 도모하면서 항일구국을 위해 재만 동포의 총력을 모은 자주적·자치적 협동조직체였다. 교포들의 정착 사업, 협동조합·교육문화 사업, 게릴라 부대의 육성, 치안을 위한 군사훈련 사업 등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창립 직후에는 조직선전부를 중심으로 지방 조직 구성에 나서 중동선(中東線)·길돈선(吉敦線) 지대에 3대의 선전원을 파견하였고, 학교 설립을 위해 북만중학기성회를 조직하였으며, 1929년 10월에는 산시(山市)에 정미소를 세우기도 하였다.
1929년 겨울에 홍진(洪震, 1877∼1946)・이청천(李靑天, 池靑天, 1888∼1957)・정부・최악(崔岳) 등이 제의하여 한족총연합회를 민중을 관리하는 외부기구로 삼은 한국독립당 설립이 추진되었다. 한국독립당은 총무・조직・선전・군사・경리・감찰 등 6개의 위원회를 설치하였고, 북만주 일대에 거주하는 기존의 의병, 유림(儒林), 대종교 등 단체를 아우르며 진영을 정돈하고 군사 및 민중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역량을 갖췄다.
하지만 1930년 1월에 공산주의자 박상실(朴尙實, 朴尙範)이 김좌진을 암살하자, 7월에 홍진·지청천·민무(閔武)·조경한(趙擎韓, 安勳, 1900∼1993)·황학수(黃學秀, 1879∼1953)·신숙(申肅, 1885∼1967)·이장녕(李章寧, 1881∼1932) 등은 한족총연합회와 생육사(生育社)를 기반으로 한국독립당과 휘하 당군인 한국독립군을 조직하였다. 그 뒤 한국독립당은 여러 곳의 주민회를 연합하여 주민을 결속하고 사회주의자의 활동을 저지하려고 1931년 2월에 ‘북만한족자치연합회’를 조직하였다. 북만한족자치연합회의 전신인 한족총연합회는 북만주 일대 민족주의 세력의 결집과 함께 남만주의 정의부와 일부 신민부 계열 인사들 주도로 결성한 국민부·조선혁명당·조선혁명군의 성립에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