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첫 조선족 화가이다. 원래 이름은 한광우이다. 1898년에 중국 길림성 연길현 용정촌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였는데, 9세에 용정 관립학교에 입학하여 졸업한 뒤 용정전화국과 용정해관 사무원으로 취직하였다. 1919년 가을에는 러시아 연해주로 유학을 떠났다가 다음 해 가을에 중국 상해로 건너와 상해미술전과학교에 입학하였다. 1923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는데, 다음 해에 상해미술전과학교를 졸업하고는 중국공산당에 의해서 심양으로 파견되었다. 이때 이름을 한락연이라 고치고 화가로 활동하면서 미술전과학교를 설립하였다. 1925년 7월 말에는 하얼빈으로 파견되어 보육학교에서 가르쳤다가 1928년에 상해로 돌아 왔다.
그 뒤 당 조직이 깨지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1931년에 파리미술학원에 입학하였다. 공부를 마친 다음에는 네덜란드, 스위스, 영국, 이탈리아 등을 돌아다니면서 각국의 화풍을 익혔다. 1937년에 중국으로 돌아와 무한과 중경에서 ‘동북항일구국총회’에 참석하였으며, 1940년 봄에는 서안에서 국민당에 체포되어 3년 동안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1943년∼1947년에는 난주와 서안에서 20차례의 미술전람회를 열었다. 1946년 4월부터는 신강에서 고대 고창국(高昌國) 유적지와 키질(Kizil) 천불동(千佛洞) 발굴 정리 사업을 처음으로 진행하였다. 하지만 1947년 7월 30일에 비행기를 타고 적화에서 난주로 가다가 조난사고를 당하여 세상을 떠났다. 2010년 9월 22일에 중국 용정시 정부에서 용정 토성포의 육도하와 해란강 합수 지점에 락연공원을 세워 공적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