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우(劉一憂)가 중국 길림성 장백현(長白縣) 시가에 설립하였다. 그는 장백현 한인 사회를 하나로 묶기 위해서 ‘바르게 깨우친다’는 뜻을 담은 정몽학교를 세우고, 학생에게 철저한 민족주의 교육을 실시하였다. 교사와 학생들은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였고, 그 뒤에도 독립운동의 산실로 기능하였다.
압록강 상류 지역에 위치한 장백현은 국내의 혜산진, 삼수, 갑산으로 진출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일찍부터 한인사회가 발달하여 홍범도(洪範圖) 의병부대를 비롯한 독립군의 근거지가 되었다.
정몽학교의 교장은 유일우가 맡았고, 유래귀(柳來貴)·이동백(李東白)·이호용(李鎬鏞) 등은 교사로 재직하였다. 교과목은 역사·한문·중국어·수학·윤리·물리·화학·작문 등이었는데, 특히 민족주의 교육을 집중적으로 실시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3월말 경에 정몽학교 교사 김관해를 비롯하여 수십여 명의 학생들이 장백현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또한 정몽학교는 장백을 무대로 활동하던 광정단(匡正團)의 간부 출신인 오주환(吳周煥)이 1925년에 제1정몽학교 교장을 맡는 등 독립군 단체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광정단은 1922년에 대한국민단대진단·대한독립군비단·흥업단 등의 독립군 단체가 통합 발전한 독립군단으로, 이후 정의부로 통합되었다.
정몽학교는 장백현 한인사회의 구심점이자 장백현 한인 학생에게 새로운 근대문화를 전수하는 교육의 장이었다. 이 학교 출신은 민족주의 교육을 통해서 한국독립운동에 필요한 인재로 성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