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7월 7일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이 조직되면서 각 정동리 부락연맹과 관공서 학교 은행 기타 단체들로 결성된 각종 연맹 산하에 10호 단위로 만들어졌다.
지방조직은 도연맹, 부군도(府郡島)연맹, 읍면동맹, 정동리부락연맹 등 행정단위를 기본으로 결성되었다.
일본의 국민정신총동원 운동이 시정촌 단위의 조직 없이 출발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조선에서는 말단행정 단위를 기본으로 주민조직을 결성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말단에 이르는 조직망이 조선에서 먼저 이루어진 이유는 대륙침략 정책의 수행에서 병참기지의 역할을 담당해야 할 조선에서 적극적인 협력을 이끌어 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애국반은 인적, 조직적으로 동원 가능한 자원이 빈약했던 조선에서 총독부가 주축이 되어 만든 최하부 말단 조직이다. 총독부는 애국반 단위를 통해 주민들에게 후방에서의 마음가짐과 임무에 대해 선전하면서 노동력과 자원 등을 체계적으로 동원하려 하였다. 그동안 매스컴은 물론 공식교육이나 각종 단체 활동의 영향력 밖에 있었던 대부분의 조선인, 특히 가계를 이끌어 가는 주부를 비롯한 일반 주민들이 설득과 동원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이다.
애국반 조직의 규모는 1938년 10월 말 애국반 수 28만, 반원 수 409만여 명이었던 것이 1939년 2월 말에는 31만여에 425만여 명의 반원으로 증가, 주민 대부분을 망라하게 되었다.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은 인쇄매체를 통한 교화 선전에도 많은 힘을 기울였다. 기관지 『총동원』 이외에도 일본어를 모르는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자매지 『새벽』을 35만부씩 만들어 애국반 단위로 회람하게 하였다. 『새벽』의 배포와 더불어 앙케트 조사를 하여 『새벽』을 받은 날이 언제인지, 최근 자신이 속한 반에서 하는 일과 계획하고 있는 일, 해당 반에 모범 인물이 있는지 지원병이 있는지 창씨를 하였는지 등의 여러 질문에 대한 답변을 집계하여 『총동원』에 공개하였다.
1940년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을 국민총력연맹으로 개칭한 후 조선인의 황국신민 철저화 및 국민총훈련과 생산력 확충 등을 최대 강령으로 하면서 애국반 조직을 확대하였다. 기존과 마찬가지로 10호 30명 단위를 표준으로 조직을 확대하여 1940년 12월에는 전국적으로 약 38만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총력연맹은 선전을 위하여 기관지 『국민총력』을 매월 1일과 15일 두 차례 발행하고 주요 내용을 다시 평이하게 해석한 『애국반』을 일본어와 조선어 2종류로 47만부를 인쇄, 배포하였다.
초기에는 황민화를 위하여 신사참배와 반상회에의 참가를 요구하였으나, 전쟁의 확대와 함께 갖가지 동원을 위한 기초 단위로 되어 갔다. 근로봉사, 저금, 국채 매입, 국어보급, 금은 식기 공출 등을 위한 말단 단위의 조직으로서 역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