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황경락(黃敬洛), 예명이 무봉(舞峰)이다. 일본 후쿠오카(福岡)에서 1930년 10월 27일 황지용(黃池龍)과 천두연(千斗蓮)의 6남 중 3남으로 출생했다. 일본 아츠카에서 중학교(5년제)를 다닐 때 특별활동 시간에 발레를 배웠다. 1945년 8·15해방으로 고성의 외가로 돌아와 정착했다. 고성오광대와 고성권번의 전통 음악과 춤에 큰 관심을 가졌다. 무용 교육자와 안무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중 1985년 교통사고로 무용 일선에서 은퇴하였다. 1995년 7월 8일 경상남도 남해에서 만6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1946년 서울 장추화무용학원에서 무용에 정식 입문했다. 「즉흥무」, 「남방무」 등 신무용을 사사했으며, 이곳에서 송범, 김진걸, 조광 등과 인연을 맺었다. 6·25전쟁 때, 대구로 피난 온 한영숙을 송범, 김진걸과 함께 만났고, 환도 이후에도 서로 어울려 춤 연습을 했다.
1953~1956년 진주에서 무용학원을 개설하여 운영했고, 김수악의 제자로 전통춤 기본과 북가락, 「진주검무」를 사사했다. 1953년 진주개천예술제에서 「산조」 작품을 처음 상연했고, 이후 다양한 이름의 「산조」를 공연에 올렸다.
1957년 부산으로 이전하여 다시 무용학원을 개설하였다. 그 해 11월 ‘황무봉 초도무용발표회’를 시작으로 매년 ‘황무봉 문하생 무용발표회’, ‘황무봉 창작무용 공연’ 등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1960년대 들어 전통무용가 한영숙을 부산으로 초대하여 「승무」, 「살풀이춤」 등 전통춤을 사사받았다.
1973년 부산시립무용단이 창단되자 황무봉은 초대 안무자로 취임하여 1975년까지 안무자를 역임하였다. 1976년부터 1990년까지 「무봉골 경사」, 「춘향」, 「해돋는 마을」, 「백설공주」 등 무용극을 지속적으로 공연했다. 1985년 교통사고 이후 무용 활동을 접었다. 1990년 ‘황무봉 무용생활 50년 회갑기념 공연’에는 1977년 초연되었던 「춘향」을 김매자, 이영희, 김현자 등의 제자와 지인들의 도움으로 부산과 서울, 진주에서 재공연하였다. 이로써 무용공연 활동을 마감했다.
황무봉은 20세기 후반 부산 일대를 중심으로 지역 무용 활성화와 후진 양성에 크게 공헌했다. 신무용과 전통춤의 경계를 넘나들며 창의적인 작품을 안무하였고, 그의 창작 활동 후반기에는 다양한 무용극을 남겼다. 또한 현대 한국무용계의 큰 별이라 할 만한 유명 무용가를 많이 배출한 무용교육가이다.
1953년 10월 경남예술제에서 공로상을 수상하였다. 2005년 5월 16일 오후 7시 30분 서울 리틀엔젤스예술회관에서 고(故) 황무봉 선생추모 10주기 기념공연 ‘당신의 춤사랑 뒷그림자 이어갈 때’가 개최되었고, 5월 13일에는 부산문화회관에서 14일에는 진주 경남문예회관에서 추모공연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