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춤은 노동을 하면서 느끼는 어떤 감흥이 노동 현장이나 삶의 현장에서 표현된 춤으로 노동이나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춤이 펼쳐지는 마당의 공간적 의미로는 전통연희 공간이었던 들판이나 언덕바지, 마을의 빈터나 집 안팎의 뜰 그리고 장터나 광장에서의 가설무대 등 야외 원형무대를 의미한다. 마당의 형태적 의미로는 관중과의 직접적인 상호교류가 이루어지며, 즉발적인 현장반응이 유도되기도 하고 집단적인 신명이 창출되기도 하는 장소로 춤은 현장성, 즉흥성, 자유성이 보장된 가운데 삶과 예술의 일체화를 이루어 낸다. 뿐만 아니라 유형별로는 노동과의 연관 속에서 춤동작은 일의 움직임과 불가분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일상 생활인이 추는 민속연희의 한 유형으로 펼쳐진다.
고대로부터 우리나라의 춤은 교방계열을 제외하고는 마당춤이 아닌 것이 없을 정도로 마당을 연희공간으로 하여 펼쳐져왔다. 신라시대 화랑들은 산천경개 좋은 곳을 찾아다니며 춤추고 노래를 불렀으며, 고구려에서는 사냥을 하거나 행렬 중에 춤을 췄다. 조선시대 궁중무용은 궁중의 뜰에서 추어졌고, 서민들은 노동하는 삶의 연장선에서 마을광장에 모여 신명난 춤판을 펼쳤다. 또한 현대에 와서는 1970~80년대에 펼쳐졌던 군중집회나 시위현장에서의 시국춤, 현실비판의 마당굿, 노동현장에서의 문화운동 등도 광의의 의미에서는 마당춤의 현장성을 잇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마당춤이라 하면 노동의 주체였던 서민들이 삶과 예술을 일체화시켜내는 열린공간에서의 자유롭고 활달한 춤을 일컫는다. 대표적으로는 가면극 놀이에서의 탈춤, 풍물패의 잡색놀음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마당춤은 오늘날 거리춤, 소극장춤, 야외무대와 같은 새로운 축제의 공간예술과 맞닿아있지만 노동과 삶과 예술종교적 측면이 혼재된 연희공간으로서의 마당과는 본질적으로 차이를 지닌다.
대표적인 마당춤으로 탈춤이나 풍물패 놀이에서의 춤 등을 꼽을 수 있다. 주된 특징은 노동 행위의 주체가 연희자가 되어 즉흥적으로 관객과 직접 교류하는 가운데 신명의 판을 창출하며, 당대 현실 문제를 다루기도 하면서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삶의 축제성 회복’을 이루는 열린춤판이라는데 있다.
탈춤으로는 해서지역의 봉산탈춤, 강령탈춤, 은율탈춤, 북청사자놀음, 경기지역의 양주별산대놀이, 송파산대놀이, 영남지역의 수영야류, 동래야류, 진주오광대, 고성오광대, 가산오광대, 통영오광대, 하회별신굿 등이 전승되고 있으며, 특히 고성오광대놀이의 ‘덧배기춤’, 밀양백중놀이의 ‘범부춤’ 그리고 ‘동래학춤’ 등은 현대에 와서 재조명되고 있는 춤이다.
풍물패의 연희 중에서는 강릉농악, 평택농악, 진주삼천포농악, 이리농악, 임실필봉농악, 고창농악 등이 있으며, ‘부포춤’, ’설장고춤‘, ’북춤‘, ’진도북춤‘, ’소고춤‘, ’채상소고춤‘, ’고깔소고춤‘ 등이 대표적이다. 오늘날 이 춤들의 무대화가 두드러지는데, 그 이유는 이미 농악의 개인놀이인 구정놀이에 일인 독무(獨舞) 내지 독주(獨奏)로 각 춤들이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노동요와 함께 추어진 밀양백중놀이, 남해안별신굿과 동해안별신굿, 은산별신굿 등에서 펼쳐지는 춤이 있고, ‘진도씻김굿’이나 ‘강강술래’ 같은 진도예능도 마당춤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대체로 마당춤은 대사나 노래, 몸짓 등과 어우러지면서 펼쳐지며, 지역적, 지리적 특성과 관련있는 춤사위가 펼쳐진다.
전통시대에 서민의 삶, 노동활동과 긴밀한 관계 속에서 즐겨 추어진 마당춤은 오늘날 실내극장(대극장, 소극장)에서 무대예술로서의 격식을 갖추면서 일상적인 노동의 삶과 괴리된 예술형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물론 각 지역의 탈춤과 풍물은 무형유산 전승제도에 힘입어 보존회관을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으나 삶의 터전이 도시화되면서 일상의 마당이 아니라 조직되고 계획된 예술공간으로서의 서울놀이마당 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다. 더욱이 민속춤을 소재로만 삼아 고급예술 성향만을 따르다 보니 삶과 예술의 일체화를 통한 공동체성 회복은 손상되거나 부정되면서 오로지 ‘보는 예술’로서만 연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