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조선의 고전음악을 관현악곡으로 편곡한 음악을 사용하며, 전통적인 한량복장에 갓을 쓰고 경쾌하게 추는 춤이다. 최승희는 한성준에게서 배운 태평무와 한량무를 기초로 새롭게 해석하여 애수와 즉흥성이 강한 춤으로 재창작하였다.
헐렁한 비단 장삼옷에 초립 모자를 비딱하게 쓰고 춘 남장(男裝)춤으로서, 조선인 한량이 술에 얼큰하게 취한 상태로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고개를 끄덕거리고, 배를 볼록하게 내민 채 팔자걸음을 걸으며 추어,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춤이다. 이 춤은 기생들이 추는 조선무용과는 전혀 다르며, 조선 사람의 마음을 표현한 새로운 무용으로, 술에 취한 자신의 아버지가 추었던 굿거리춤에서 영감을 얻어낸 작품이라고 최승희가 작품의 의미를 밝혔다.
이 춤은 1933년에 창작되었지만 춤을 무대에 올린 것은 1934년 5월 동경의 일본청년회관에서 열린 여류무용발표회에서였다. 당시 이 대회에 출연하기로 하였던 이시이 바쿠 무용연구소의 한 무용가가 급성 늑막염에 걸려 출연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최승희가 대신 선발되었다는 에피소드가 전한다.
2011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양성옥이 이 작품을 분석하여 재현했다.
1933년 조선춤의 소재를 서양춤의 기법으로 살려낸 최승희의 첫 조선무용 작품 「영녀계」를 발표한 이후 최승희는 서양 무용계의 무서운 신인으로 등장하면서 당시 일본 문인들 사이에서 주목받게 되었고, 이를 시작으로 반도의 무희로 급성장하였다. 당시 한국에서는 최승희가 ‘주먹춤’을 춘다고 현대무용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 작품의 성공을 발판으로 최승희는 그녀만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발견하고 훗날의 ‘최승희류 조선무용’ 확립에 이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