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고종 31) 4월 5일 서울에서 태어나 1909년 보성중학교를 졸업했다. 1911년 서울 묵정동에 일본인 도미타 기사쿠〔富田儀作〕가 세운 ‘한양고려소(漢陽高麗燒)’에서 일하면서, 도자기 제작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고려청자를 재현하기 위해 전국의 옛 가마터를 조사하고 재료에 대해 연구하였다.
1955년 한국조형문화연구소(韓國造形文化硏究所)의 성북동가마〔城北洞窯, 澗松窯, Kiln of Korean Art Society〕와 1956년 한국미술품연구소(韓國美術品硏究所)의 대방동가마〔大方洞窯〕에서 조각장(彫刻匠)으로 일하다가, 1958년 경기도 이천시 수광리에 내려가 자리 잡았다. 1967년에 해강고려청자연구소(海剛高麗靑磁硏究所)를 설립하였고, 1990년에는 장남 유광열과 함께 해강도자미술관(海剛陶磁美術館)을 세웠다. 1993년 1월 20일 백 세로 사망하였다.
일본인 도미타 기사쿠가 1911년 8월에 설립한 청자공방인 한양고려소에서 조각장으로 일하게 되면서, 고려청자 재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후 전국의 옛 청자 가마터를 조사하면서 고려청자의 재현을 위해 노력하였다. 미국 록펠러 재단의 지원으로 1955년 10월 설립된 한국조형문화연구소의 성북동가마에서 조선시대 백자를 현대화시킨 백자 제작에 참여하였고, 구황실 재산을 임대하여 1956년 가을에 설립된 한국미술품연구소의 대방동가마에서는 조각부에 소속되어 청자연구 및 조각장으로 일하였다. 1958년 대방동 가마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게 되자, 이듬해부터 경기도 이천시 수광리의 광주요로 자리를 옮겨 제작에 참여하였다.
1967년 해강고려청자연구소를 세우면서부터 매병(梅甁), 다완(茶碗) 등의 청자 모조품을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일본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판매에도 성공을 거두었다. 이천시가 도자전문 도시로 발달하는데 큰 역할을 한 인물 중 하나로 평가된다. 1981년 이천 도예가들이 전통도자문화의 발전을 위해 설립한 한국전승도예협회에 노석경, 안동오, 조소수, 지순탁 등 원로 전승도예가와 함께 고문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