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욱은 해방 이후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을 역임한 의료인이다. 1945년 서울 출생으로 1970년 서울대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재학 중 경기도 안양의 성 라자로 마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았으며, 한국 한센병 환자들을 간호하던 일본인 여성 가부라키 레이코와 결혼했다. WHO의 요청을 받고 1983년 이후 피지, 서태평양 지역사무처, 스위스 등에서 한센병 전문가로 활동했다. 이후 소아마비와의 전쟁, 결핵퇴치사업을 추진하였으며, 2003년 WHO 제6대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었다. 2006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가운데 최고등급인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
1945년 4월 12일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출생으로본관은 전의(全義)이다. 1957년 덕수초등학교와 경복중학교를 졸업했다. 1963년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입에서 의대를 지망했으나 낙방해 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을 입학해 졸업한 후 1970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해 1976년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재학 중 경기도 안양의 성 라자로 마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았으며, 1976년 이곳에서 한국 한센병 환자들을 간호하던 일본인 여성 가부라키 레이코[鏑木珍子]를 만나 그해 12월 18일 결혼했다. 결혼식은 명동성당에서 노기남 대주교의 주례로 진행되었다.
졸업 후 춘천의료원에서 근무하다 사직하고 1979년 미국 하와이대학교 보건대학원으로 유학떠나 1981년 5월 하와이대학교 보건대학원을 졸업한 후 남태평양 사모아의 린든 B. 존슨병원(Lyndon B. Johnson tropical medical center)에서 의사로 근무했다. 사모아에서 근무하며 남태평양 원양어업 전진기지에 진출한 200여 척의 원양어선 선원 2천여 명과 교민들을 위한 의료봉사를 진행했으며, 일본 센다이의 국제학술대회에서 「한센병 잠복기 발견을 위한 연구」를발표하고 국제 한센병 저널에 이름을 올리며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한센병 전문가로 알려지자 WHO(세계보건기구))에서 WHO 서태평양지역 사무처 한센병 자문관으로 일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1983년부터 피지에서 활동했다. 당시 더운 날씨로 인해 약들이 엉겨 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댑손과 클로파지민을 섞어서 보관한다는 사실을 영국의료전문지에 실어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1991년 서태평양 지역사무처 질병예방 및 관리국장으로 임명되어 필리핀의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았다.
1994년 WHO 본부 예방백신국장을 맡아 스위스 제네바에서 근무했다. 스위스 근무 당시 “우리의 미래이고 희망인 아이들에게 목숨을 잃거나 다리가 마비되는 고통을 줄 수 없다”며 ‘소아마비와의 전쟁’을 선포했으며, 1년 후인 1995년 소아마비 발생률을 세계인구 1만명 당 1명 이하로 낮춰 미국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으로부터 ‘백신의 황제’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다. 1999년 9월 브룬틀란(Gro Harlem Brundtland) 전 노르웨이 수상이 WHO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자 특별보좌관으로 지명되었으며, 2000년 12월 결핵국장에 임명되어 국제의약품기구를 설립해 북한에 6만 명 분의 결핵약을 공급하고 22개국의 결핵 고위험국을 대상으로 결핵퇴치사업을 추진했다.
2003년 브룬틀란 사무총장의 임기가 만료되자 제네바에서 32개 집행이사국이 참가한 가운데 각국에서 지원한 80여 명의 후보와 경쟁을 벌여, 7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WHO 제 6대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었으며, 한국인 최초의 UN 전문기구 수장이 되었다. 그해 7월 취임하면서 2005년까지 세계 300만명의 에이즈 환자에게 항에이즈 바이러스 치료제를 보급하겠다고 공약하고 「3 by 5 사업」을 추진했다.
2004년에는 조류인플루엔자 확산방지와 소아마비 · 결핵 퇴치 · 흡연규제 등으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올랐다. 2005년 12월 에이즈의 날에는 100만 명의 에이즈환자에게 치료제를 공급했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WHO 사무총장으로 재임한 3년 동안 60여 개 국가를 방문해 미국, 프랑스, 러시아 정상에게 의료펀드 확대를 호소했다. 2006년 5월 22일 WHO 총회 준비 중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져 사망했으며, 5월 24일 스위스 제네바 노트르담 성당에서 WHO 장(葬)으로 장례식이 치러졌다. 유해는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한국 정부는 우리 국민으로는 처음 주요국제기구인 WHO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어 3년간 세계보건증진을 위한 혁혁한 업적을 쌓아 국위를 선양한 공적을 기려 2006년 5월 대한민국 국민훈장 가운데 최고등급인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이밖에 2002년 4월 보건복지부 국민훈장 모란장, 2003년 12월 한국언론인연합회 제3회 자랑스런 한국인대상(국제봉사부문), 2004년 10월 대한적십자사 적십자 인도장 금장, 2005년 2월 미국 하와이대학교 자랑스런 동문, 2005년 10월 서울대학교 제15회 자랑스러운 서울대인, 2006년 11월 파라다이스상(특별공로 부문), 2008년 11월 대한의사협회 · 한미약품 제1회 한 · 미 자랑스런 의사상 등을 수상했다. 서울대학교는 2011년 명예 의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