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뽕나무는 뽕나무과에 속하는 큰키나무이다.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하며 산기슭, 논둑, 밭둑의 양지에서 잘 자란다. 추위에는 잘 견디지만 공해나 건조에는 약하며 햇볕이 부족한 그늘에서는 잘 자라지 못한다. 식물을 심을 수 없는 산비탈 계곡 전석지(轉石地) 같은 곳에 선구적으로 들어가는 선구식물종의 하나이다. 학명은 Morus bombycis Koidz. 이다.
꽃은 4∼5월에 암수딴그루에 피는데, 간혹 암수한그루인 경우도 있다. 열매는 6∼7월에 흑자색으로 익으며 먹을 수 있다. 뽕나무와 매우 유사하나 잎 끝이 꼬리처럼 길게 빠지고 열매에 암술대가 익을 때까지 떨어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잎은 변이가 심해 깊게 갈라지는 개체도 있다. 보통 높이 7∼8m 정도로 자라지만 잘 자란 나무는 10m 이상 크기도 한다.
누에를 치고 비단을 짜는 양잠(養蠶)은 나라의 중요한 산업이었다. 뽕나무는 비단의 원료가 되는 나무로 중국에서 들여와 심어 기르던 나무이다. 우리나라에는 뽕나무와 유사한 나무로 산뽕나무가 전국의 낮은 산지와 들에 자생한다.
중국 진나라 때 편찬된 『삼국지(三國志)』 위서동이전魏書東夷傳) 마한조에 “누에를 치고 비단을 짜서 옷을 해 입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 양잠이 시작된 것은 삼한시대 이전으로 짐작된다. 또 고구려 동명왕 때와 백제 온조왕 때 농상(農桑)을 권장하였고, 초고왕 때는 양잠법과 직조법을 일본에 전해주었다고 한다.
고려 때에도 누에치기를 권장한 기록이 남아 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왕비가 친히 누에를 치고 친잠례(親蠶禮)를 거행하였다. 또한 잠실(蠶室)이라 하여 누에를 키우고 종자를 나누어 주던 곳도 따로 있었을 만큼 양잠은 나라의 귀중한 산업이었다.
잎으로 누에를 치는 것 외에도 구황식량으로도 쓰였다. 봄에는 어린잎을 나물로 먹기도 하고 잎을 따서 말려 두었다가 흉년이 들면 가루로 만들어 곡식가루와 섞어 먹었다. 뽕나무 열매인 오디는 상실(桑實) 또는 상심(桑椹)이라 하여 식용하기도 하고 건조한 열매를 한약재로 썼다. 이 열매는 이뇨 효과와 함께 기침을 멈추게 하고 강장 작용을 하며 기타 여러 질병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뽕나무 껍질은 상백피(桑白皮)라 하여 소염, 이뇨 및 기침을 멈추게 하는 용도로 썼다.
뽕나무 목재는 활을 만드는 궁간목(弓幹木)으로 사용되어 상궁(桑弓)으로 제작되었으며, 수레의 멍에를 만들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역사가 오래된 나무이면서도 많은 전란을 겪는 동안 궁간목으로 벌채되어 노거수는 흔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