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하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평안북도 강계군 강계면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0년 8월 30일
사망 연도
1919년 5월 25일
출생지
평안북도 강계
대표 상훈
대통령표창|건국훈장 애국장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김명하는 일제강점기, 평안북도 강계군 강계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8일 강계면에서 기독교인과 천도교인 등 수백 명이 전개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강계면 장날에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준비하여 수천명의 군중에게 나누어 주며 시위행진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태형을 받고 석방되었으나 장독으로 1919년 5년 25일 순국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평안북도 강계군 강계면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된 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형은 강계면 만세운동의 주동자인 김경하(金京河)이다.

주요 활동

평안북도 강계군에서는 1919년 4월에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4월 8일 강계군 중심지인 강계면에서 일어난 시위가 대표적이다. 강계면 만세시위를 주도한 사람은 정준(鄭儁), 김경하, 한봉민(韓奉珉) 등이었다. 당시 김경하와 정준은 영실중학교(英實中學校) 교사, 한봉민은 명신학교(明新學校) 회계였다. 정준은 기독교인으로 4월 8일 시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정준 등은 4월 2일 간호사인 김관순(金寬淳) 등과 회합하여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고, 태극기에 연명 날인하였다. 연명 날인자는 21명에 달하였다. 거사일은 4월 8일로 정해졌다. 이들은 4월 5일 금융조합 서기인 유상우(劉相禹) 등을 읍내 광신여학교(光新女學校)로 초대하여 4월 8일에 거행할 조선독립운동회 참가를 권유하는 등, 동지를 규합하고 독립선언서를 등사하며 시위운동을 준비하였다.

김명하는 영실중학교 학생으로 형 김경하와 함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형으로부터 태극기를 제작할 것을 지시받고, 같은 학교 학생들과 2,000여 매의 태극기를 만들었다.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준비하여 시위 당일 수천 명의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4월 8일 오전 11시경 읍내 기독교회당의 타종을 신호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기독교인과 천도교인 등 약 700~800여 명은 구한국(舊韓國) 국기(國旗)를 세우고 만세를 연호하며 강계 시내를 행진하였다. 즉시 출동한 일본군 보병과 헌병은 시위 군중을 향해 아무런 사전경고 없이 총을 쏘았다.

이로 인해 시위를 이끌던 정준 등 4명이 현장에서 즉사하고, 10여 명이 부상당하였다. 사망자 중 1명은 임산부였다. 무력 진압에 만세 군중들이 피신을 하자 군경은 끝까지 추격하여 53명을 체포, 구금하였다.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태형(笞刑) 판결을 받은 11명 중 2명이 집행과정에서 사망할 정도로 가혹한 처벌이 가해졌다.

김명하는 4월 8일 강계면 장날에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준비하여 수천 명의 군중들과 함께 시위행진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태(笞) 90대를 받고 석방되었으나, 장독(杖毒)으로 1919년 5월 25일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대통령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4(국가보훈처, 1972)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2(국가보훈처, 1971)
김승학, 『한국독립사』 하(독립문화사, 1965)
문일민, 『한국독립운동사』(애국동지원호회, 1956)

신문 · 잡지

『신한민보』(1919. 8. 30.)
『신한민보』(1919. 7. 19.)

인터넷 자료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집필자
이동언(선인역사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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