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 (Christian academ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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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구조
사건
1979년 3월 9일 크리스찬아카데미 중간집단교육 간사들이 구속 기소된 공안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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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79년 3월 9일 크리스찬아카데미 중간집단교육 간사들이 구속 기소된 공안사건.
내용

1965년 5월 7일 창립된 ‘한국크리스찬아카데미’는 2000년 사단법인 ‘대화문화아카데미’로 개칭되었다. ‘한국크리스찬아카데미’의 전신은 1959년 강원용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에 걸친 인문사회과학자 및 신학자들과 함께 창설한 ‘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이다.

크리스찬아카데미는 1968년 자체 프로그램을 3대 단원(대화모임-연구조사-교육훈련)의 삼정립 형태로 구성함으로써, 타 학술연구소나 대학연구소들과는 달리, 목표로 하는 새로운 사회건설과 새로운 역사창조에 관련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해결책과 대안을 찾는 것을 핵심과제로 삼았다.

대학제도 밖에서 정기적인 연구발표와 사회조사, 케이스스터디 등의 방법을 통해 각 분야별로 문제를 분석하고 이해함으로써 그 원인을 밝히고, 이를 사회병리학적으로 진단함으로써 문제해결을 위해 실천 가능한 방법을 모색하고자 했다. 또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대화 모임을 통해 협업하는 형태로 진행되었으며, 대화의 이론 · 방법론 탐색과 사회문제 연구조사, 리더십 교육훈련 등 각각의 단계들이 서로 맞물려 있었다.

1970년대, 크리스찬아카데미가 지향했던 운동적 성격 즉, 현실 · 현장과의 접점과 더불어 사회변역에의 집합적 실천과정은 강원용이 제창했던 ‘인간화’ 개념을 통해 비인간화를 구조화하는 지나친 비민주적 조직화 및 관료제화에 배태된 비정성(非情性)을 비판하고, 집합적인 행위만이 구조적으로 파생되는 비인간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제2차적 중간(매개)집단의 형성과 연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중간집단은 강력한 유신체제 아래 위축된 민(民)과 지식인들 사이에서 이 둘을 매개하는 집단으로써 사회적 자유와 정의를 실천할 개혁적 주체집단으로 상정되었다. 크리스찬아카데미는 중간집단의 창출과 더불어 이들의 의식화를 촉진할 다양한 사회교육 프로그램을 구축하고자 했다.

유신체제시기 농민, 노동, 여성운동 등 각 부문 운동들이 활성화되자 당국은 크리스찬아카데미를 의식화의 배후세력으로 규정하고 중간간부 격인 중간집단교육 프로그램의 간사들을 대거 체포했다.

1979년 3월 9일 여성사회분과 간사 한명숙의 연행으로 시작해 농촌사회분과 간사 이우재, 황한식, 장상환, 산업사회분과 간사 김세균, 신인령 등과 더불어 정창렬(한양대 교수)이 구속되었으며, 유병묵(전 중앙대교수), 박현채, 양정규, 신혜수, 크리스찬아카데미 원장인 강원용 목사가 연행되어 조사를 받기도 했다. 중앙정보부는 이 사건을 불온사상을 유포한 불법 지하 용공서클 사건으로 규정했으나 항소심에서 용공서클 혐의는 무죄로 판명되었다.

참고문헌

『한국민주화운동사』2(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돌베개, 2009)
『빈들에서: 나의 삶, 한국현대사의 소용돌이』(강원용, 열린문화, 1993)
『크리스찬아카데미 10년사』(민경배, 삼성출판사, 1975)
집필자
김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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