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 정치회담은 1953년 7월 맺은 휴전협정을 근거로 한 것이다. 휴전회담 제4조 60항에는 3개월 이내에 고위정치회담 개최를 권고하고 있다. 이 회담에는 남한과 UN군 참전 국가 중 15개국, 북한, 중공, 소련 등 총 19개국이 참가했으며, 주요 의제는 통일방안 제시, 선거방식과 외국군대 철수시기 논의였다.
제네바 정치회담 자체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이승만 정부는 4월 19일 미국으로부터 육해공군의 증강 지원을 약속받고 나서야 회담 참가를 결정했으며, 변영태를 수석대표로 하는 대표단 명단을 발표했다. 반면 북한 정부는 회담에 적극적이었고, 상당한 기대감을 표명했으며, 대표로 남일 외무상과 백남운, 기석복을 참여시켰다.
1954년 4월에서 6월에 걸쳐 개최된 제네바 정치회담은 남과 북이 나란히 주요 강대국과 함께 한반도 통일을 논의한 최후의 회담이었다. 4월 27일 열린 정치회담에서 한국의 정치적 장래문제가 논의되었는데, 연설자로 나선 남측 수석대표 변영태는 “중공 개입 이전 남한에 있던 UN경찰군의 철퇴와 중공침략군의 철퇴가 동시에 일어나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언명했으며, UN에 의해 취해진 결정, 특히 소련이 좌절시킨 한반도 전 국토에 걸친 총선거 실시계획을 언급하며 “독립에 이르는 길을 막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 UN의 사명”이라면서 이북지역에서의 유엔 감시 하 자유선거를 주장했다. 북측 수석대표 남일은 외국군 철수 후 “전조선 주민의 자유 총선거에 기초한 통일정부 수립”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6개항을 제안했다.
남과 북은 확연하게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이러한 상황에서 UN 참전 국가들은 UN 감시 하남북한 총선거를 실시하는 통일안을 검토하고 있었으나, 남한 측은 이미 1948년에 자유선거가 실시되었으며 나머지 과업은 정권을 참칭하고 있는 북한지역에서 동일한 선거를 실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변영태 외무장관은 5월 7일 “북한에서만 선거를 실시해야 한다는 1950년 10월 7일부 UN결의안을 기초로 하는 것”이라고 입장을 표명했으며, 5월 12일 이승만 대통령은 UN 감시 하 남북한 총선거안을 거부했다.
팽팽한 의견대립으로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자 중국 수석대표 주은래는 5월 22일 외국군 동시 철수를 전제로 중립국 대표로 구성되는 중립기구를 창설해 전조선 선거를 책임지게 하자는 내용의 새로운 안을 내놓았다.
이에 같은 날 남한 측 대표 변영태는 ‘한국 통일에 관한 14개 원칙안’을제안했다. 이 원칙안은 참전 16개국의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공산 측에 의해 거부될 것을 예견한 제안이기도 했다. 원칙안의 주요 내용은 ① 유엔 결의에 의한 UN 감시 하 자유선거 실시, ② 이북지역에서의 자유선거 실시와 대한민국 헌법절차에 의한 이남지역에서의 선거 실시, ③ 선거 실시 1개월 전 중공군 철수 ④ 통일한국의 대통령 선거, 대한민국 현 헌법의 개정문제, 군대 해산문제를 전 한국 입법부 결의에 위임, ⑤ UN에 의한 통일독립 민주 한국의 권위와 독립 보장 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