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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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정치
인물
국회의원, 건설부장관 등을 역임한 정치인.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26년 10월 9일
사망 연도
1991년 12월 8일
본관
고령(高靈)
출생지
전라남도 고흥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신형식은 해방 이후 국회의원, 건설부 장관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26년 전남 고흥 출생으로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 고흥지역구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72년 10월 유신으로 국회가 해산되자 다음 날 유신이 새로운 역사의 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지지 의사를 밝혔다. 1976년 12월 4일 개각을 통해 건설부 장관에 임명되었다가 1978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자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1979년 10·26사건의 여파로 1980년 8월 사회정화사업에 따라 모든 재산을 헌납하고 의원직을 사퇴하였다.

목차
정의
국회의원, 건설부장관 등을 역임한 정치인.
내용

1926년 10월 9일 전라남도 고흥 출생으로,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 고흥지역구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으며 1964년 1월 민정당 윤보선 대표최고위원의 정책기조 연설을 의회에서 비판하고, 징계동의안을 제출했다. 1965년 3월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만류에도 특혜금융에 대한 책임을 물어 장기영 경제기획원 장관 해임건의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표결에서 재적 과반수 찬성을 얻지 못해 폐기되었다.

1968년 7월 5일 윤치영 공화당 의장서리 보좌관으로 임명되었고, 이어 1969년 2월 국영기업체인 국정교과서주식회사 주주총회에서 사장으로 선출되었다.

1971년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1970년 8월 국정교과서주식회사 사장을 사임하고 1971년 5·25총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고흥에서 출마해 당선되었다. 곧이어 6월 9일 공화당 대변인으로 기용되었다.

1972년 10월 유신으로 국회가 해산되자 의원직을 상실했으며, 다음 날 10·17선언에 대해 “국내의 여러가지 불합리, 비능률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통일의 성업을 완수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하면서 10월 유신이 “새로운 역사의 시발점”이 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12월 27일부터 정당 활동이 재개되자 공화당 대변인으로 활동을 이어갔으며 1973년 2·27총선에서 공화당 고흥 · 보성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3월 8일 국회 개원에 앞서 진행된 공화당 당직 개편에서 대변인 직을 사임했으며, 3월 16일 상임위원장 선거에서 재무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재무위원장으로서 1975년 7월 제정 · 공포된 「방위세법」의 제정을 추진했다.

1975년 12월 19일 공화당 정책연구실장을 겸직하는 제1무임소장관으로 임명되었으며, 재임 중 수도권 인구 소산책(疏散策)을 입안 · 기획했다. 이후 1976년 12월 4일 개각을 통해 건설부 장관에 임명되었으며, 1978년 12·12총선에서 공화당 보성 · 고흥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되자 12월 28일 재무부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1979년 2월 19일 공화당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1979년 10·26사건 이후 12월 26일 단행된 공화당 요직 개편에서 사무총장 직을 내놓았으며, 1980년 7월 18일 「사회정화사업」에 따라 8월 19일 모든 재산을 헌납하고 의원직 사직서를 국회에 제출했다.이후 정치활동 금지조치에 묶여 있다가 1984년 2월 25일 해금되었다.

정치활동 금지조치가 풀리자 4월 27일 국민당에 입당했으며, 8월 고흥 · 보성지구당 조직책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정계를 떠나 1985년 8월에 해태그룹 상임고문으로 활동하다, 1991년 12월 8일 간암으로 사망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 의정총람』(국회의원총람발간위원회, 1994)
『국회사』(대한민국국회, 1983)
『민주공화당 10년사』(민주공화당, 1978)
대한민국헌정회(www.rokps.or.kr)
집필자
임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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