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조선교육연구회는 1946년 8월 안호상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신교육운동 연구단체이다. ‘민주교육연구회’라는 이름으로 출범하였다가 ‘조선교육연구회’로 변경하였다. ‘새 조선은 교육에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민주주의 교육’과 ‘민족 교육’을 강조하였다.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던 조선어학회, 진단학회 회원이 중심이 되었다. 중심 인물로는 안호상·손진태·사공환·최현배·안재홍 등이 있다. 『조선교육』을 창간하여 1949년까지 통권 18호를 발행하였다. 광복 직후 신교육 운동·민주주의 교육·민족 교육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단체이다.
정의
1946년 8월 안호상(安浩相)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신교육운동 연구단체.
개설
설립목적
연원 및 변천
1946년 11월 8일부터 10일까지 3일간 ‘민주교육강습회’를 개최하였고, 1946년 12월 5일을 전후하여 ‘조선교육연구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강습회 결과물은 1946년 12월 22일 김기오가 대표로 있었던 문화당(文化堂)에서 『조선교육(朝鮮敎育)』이라는 출판물로 간행되었다. 이 간행물에는 ‘제일회 민주교육연구 강습회 속기록(第一回 民主敎育硏究 講習會 速記錄)’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중심 인물로는 안호상(安浩相)·손진태(孫晉泰)·사공환(司空桓)·최현배(崔鉉培)·안재홍(安在鴻)·최규동(崔奎東)·조윤제(趙潤濟)·허현(許鉉)·이인영(李仁榮)·윤태영(尹泰榮)·심태진(沈泰鎭)·이덕봉(李德鳳)·이호성(李浩盛)·심형구(沈亨求)·정건영(鄭建永)·송흥국(宋興國)·최병칠(崔秉七)·송근영(宋根永)·김기오(金琪午)·김수선(金壽善) 등이었다.
1947년 4월 15일에 발행된 『조선교육』 창간호는 ‘페스타로치특집’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으며, 안호상의 창간사, 최규동(崔奎東), 안재홍(安在鴻), 유억겸(兪億兼)의 축사가 들어 있다. 편집자 후기 이외에 ‘회원의 한 사람’이라는 필자의 글에 ‘민주주의 교육 강습회’에 천 명이 넘는 인원이 참석하였고, 교육 도서 출판과 교육 영화단 구성 등의 활동사항을 밝히고 있다. 『조선교육』 10월호 이후에는 ‘지상대학 특집’을 게재하여 통신교육을 개척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전국적인 조직망을 구축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광복 직후의 ‘국어회복운동’과 전인교육 차원의 ‘예술교육’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기능과 역할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의 교과서 평설』(이종국, 일진사, 2013)
- 『미군 점령시대의 한국 교육: 사실과 해석』(오욱환·최정실, 지식산업사, 1993)
- 『광복 후의 신교육운동, 1946~1949: 조선교육연구회를 중심으로』(홍웅선,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91)
- 『교육과 민중문화』(김인회, 한길사, 1987)
- 「민족주의와 교육: 홍웅선 저 『광복 후의 신교육운동, 1946년-1949년: 조선교육연구회를 중심으로』에 대한 논평」(박연호, 『사회과학논평』14, 한국사회과학연구협의회, 1996)
- 「미군정기의 교육 정책」(이광호, 『해방전후사의 인식』2, 한길사,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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