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시보 ()

개신교
문헌
흥국형제단에서 농촌운동을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하여 1946년에 창간한 신문.
정의
흥국형제단에서 농촌운동을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하여 1946년에 창간한 신문.
편찬/발간 경위

신문의 사장은 함태영, 주필은 김재준, 편집은 유재기가 맡았다. 첫 시작은 프린트 형태로 시작했으나 곧 타블로이드판 8면의 활판 인쇄물로 월 2회 5,000부 이상을 발행하였다. 당시 매우 많은 부수로, 전국 각지의 농민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흥국형제단은 유재기가 설립한 단체로 단순한 종교 모임이 아니라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언론활동을 통해 농촌계몽을 진행하는 단체였다. 『흥국시보』는 당시 흥국형제단의 활동뿐 아니라 기독교계 소식도 전하고, 세계정세와 국내정세를 소개하였다. 이 신문은 기독교 신문이란 특성에 따라 기독교에 관한 교리 및 신학을 게재하였다. 이는 주필인 김재준이 담당했다. 조선신학교를 설립한 자유주의 신학자였던 그는 신학을 기초로 한 생활 개선을 강조하였다. 초기 논설은 주로 유재기가 담당하였고, 현실문제와 농촌운동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신문에서는 생활 개선 운동과 덴마크 농촌운동의 내용, 예수촌 건설에 대한 구체적 계획 등과 관련된 흥국형제단의 활동상을 상세하게 소개하였다. 소식란에서는 예수촌의 소식, 기독교 서적소개, 국내외 기독교계 소식, 기독교 사상 강좌 등을 실었다. 이어 1948년부터는 농촌문제와 정책, 농촌문화, 농작물 재배법, 농산품 가공 및 공급, 농촌부업, 생활개선, 농업기술 개선책, 협동조합, 민족경제론 등 다양한 내용을 게재하였다.

국내 문제로는 김구, 여운형, 장덕수의 암살 사건과 이승만, 서재필 등 임정 요인들의 동향을 자세하게 보도하였다. 제헌국회의 소식, 미소공동위원회의 회동, 신탁통치를 둘러싼 찬탁과 반탁운동, 미군정의 정책실시, 그리고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 실시 등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루어 기독교 뿐만 아니라 일반 신문으로서도 그 역할을 담당하였다.

창간 이래 효과적인 보급을 위해 전국에 지사를 설립하였는데 지사 현황을 살펴보면, 서울 영등포·공덕동, 경기 인천·이천·안성·소래 무지리, 충남 홍산, 충북 청주, 부산, 대구, 경남 밀양·무안·김해·통영·거제, 경북 의성·경산·김천, 전북 신태인·김제 진봉·이리, 전남 강진 학천 지사 등 22개 지부가 설치되었다. 이 지사들은 『흥국시보』의 전국적 보급망의 역할을 담당했을 뿐만 아니라 신문의 주도 인물들이 적극 추진하고 있던 예수촌운동이라는 농촌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이런 차원에서 신문은 매호마다 표어를 제시하여 예수촌 건설을 위한 농촌운동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한 동리가 망하면 조국은 망하고 한 동리가 살면 조국은 산다.”, “조국의 한 홉의 땅도 헛되이 놀이지 말고 옥토의 기름진 땅을 만들자.”등의 표어를 통해, 신문은 예수촌 건설을 위해 농촌운동이 지향하는 방향과 목표를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농민·농촌사회를 계몽하는 나침반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흥국시보』는 기존의 기독교 계열의 신문들과 구별되는 점이 있었는데, 교회 및 신앙·신학 관련 기사뿐 아니라 국내외 일반적 정세 및 농촌현실, 농촌의 생활개선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이를 자세하게 소개하였다. 여기서 이 신문이 기독교인들만 소통하는 매체가 아니라 농촌현장에서 살아가는 농민들과도 소통하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예수촌 소식과 지사 소식란을 고정적으로 배치하여 전국적으로 추진되던 농민복음학교의 모집과 과정, 그리고 결과와 평가도 게재하였다.

의의와 평가

『흥국시보』는 해방 이후 기독교인들이 주도하여 만든 신문 가운데 가장 먼저 발간되었을 뿐 아니라 그 내용과 방향에 있어서도 진보적이었고, 이를 통해 농촌재건을 위한 농촌운동을 실천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해방 후 유재기의 국가건설운동과 농촌운동」『한국민족운동사연구』71(김권정, 2012)
『세대를 뛰어넘는 경계인: 허심 유재기 목사 저작집』(김병희, 예영커뮤케이션, 2011)
『이 목숨 다 바쳐서 한국의 그룬트 비히 허심 유재기전』(주태익, 선경도서출판사, 1977)
집필자
김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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