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황해도 금천군 마장굴에서 한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7년 개성 송도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수년간 송도보통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였다. 1926년 미국으로 유학을 간 그는 밴더빌트(Vanderbilt)대학에서 공부하다가 남감리교대학(Southern Methodist University)으로 옮겨서 비교문학을 공부하였으며, 1930년 학사 학위를 받았다. 1932년 동대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이태원교회(19341937)·홍제원교회(19371939)에서 활동하면서 감리교 총리원 교육원 간사(19351940)로 일하였고, 감리교의 『감리회보(監理會報)』 주필로 활약하였다. 이후 대한기독교서회 편집부 간사(19401942)·감리교신학교 교수(19421945)·대한기독교연합회 총무(19461947)·대한기독교교육협회 총무(19471949)·대한성서공회 총무(19491966) 등을 역임하였다.
1925년 단편소설 『난륜(亂倫)』을 『조선문단(朝鮮文壇)』에 발표하여 문단에 등장한 이래, 해방 전까지 10여 편의 단편 소설을 남겼다. 1956년 두세 편의 단편소설을 쓴 뒤, 최초의 단편집 『난륜』(1960)을 내고 창작활동을 그만두었다. 『난륜』 이외에도 『공상(空想)에 사는 자』, 『서문학자(序文學者)』, 『복어 알』, 『어떤 구직자(求職者)의 기도』, 『친구대접』, 『목사의 죽음』, 『준광인전(準狂人傳)』, 『민(閔)씨와 토요 오후(土曜午後)』, 『사랑의 모험』, 『어느 성탄제(聖誕祭)』, 『오장로(吳長老)』, 『계시(啓示)』 등의 단편소설을 발표하였다.
그의 작품 경향은 본격소설로서 견실한 구성보다 담담한 사소설적(私小說的) 경향을 보이며, 주제도 소박한 인도주의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 사실주의적 창작태도를 중시하면서도 표현에서는 추상적 묘사, 평면적 구성, 과다한 사실 부연, 과장과 풍자 등이 많다. 다만 데뷔작인 『난륜』만이 비교적 사실주의적 태도를 보여준다. 『오장로』(1956), 『계시』(1956) 등은 기독교인의 바른 신앙자세를 꼬집는 윤리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단편소설 이외에 『신학세계』, 『조선감리회보』, 『기독교사상』 등의 기독교계 신문이나 잡지에도 많은 글을 게재하였다.
1946년부터 1966년 은퇴할 때까지 아현교회 소속으로 활동하였고, 말년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자녀들과 함께 지내다가 1990년 뉴욕에서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