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운동을 통해 한글 원본, 문자보급 교재 등을 민중에게 보급하고, 학생계몽대를 조직하여 지방으로 내려가 강연과 교육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를 통해 약 1만 명이 한글을 해독하게 되는 성과를 올렸으며, 심훈의 소설 「 상록수」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35년 이후 조선총독부에 의해 금지됨으로써 위축되었다.
1920년대 조선인의 문맹률이 90%에 이를 정도로 높은 현실에서, 학교교육 기회의 혜택을 받은 학생들에게 “동리 무식한 사람들과 학교에도 못가는 아이들에게 국문이라도 가르쳐주어야 한다.”는 민중 교화의 책임을 부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의 언론사는 “자기의 향리의 산천이나 향리의 인민의 생활을 관찰하여 문장으로 서술하여 보는 습관을 기르는 것은 학생 각자에게 심히 중요한 일”이라며 “조선 현실에 관한 지식”을 얻는 기회로 활용하도록 홍보하였다. 언론사의 입장에서 보면 문맹 인구를 줄여 독자층을 확보하고 조선 현실을 기록하여 보고하는 필자층의 연결망을 구축하는 일이기도 하였다.
문자보급운동은 한글 철자법을 정리하고 체계화하여 가르치는 활동을 포함하는 것이다. 조선의 말과 글을 과학화하고, 조선의 말과 글에 관한 일체의 연구와 정리 및 이의 실시 보급에 관한 모든 운동의 총체로, 우리 민족문화의 중심 운동으로서 의의를 지닌다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