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보급운동 ()

학교교육
사건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 초까지, 민중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위해 전개했던 문맹퇴치운동.
사건/사회운동
발생 시기
1920년대 말
종결 시기
1930년대 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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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문자보급운동은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 초까지, 민중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위해 전개했던 문맹퇴치운동이다. 한글과 문자보급 교재 등을 보급하였고, 지방으로 내려간 학생계몽대는 강연과 교육 활동을 통해 약 1만 명이 한글을 해독하게 되었지만, 1935년 이후 일제의 조선총독부에 의해 금지되었다.

정의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 초까지, 민중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위해 전개했던 문맹퇴치운동.
발단

1920년대 후반 문화운동 차원에서 조선어문 연구와 정리 보급 활동이 나타났고, 조선의 농촌 현실 개선과 농민에 대한 계몽운동이 활성화되고 있었다. 이에 『조선일보』『동아일보』 등이 주축이 되어 ‘학생 하기(夏期) 브나르드 운동’, ‘귀향 남녀 문자보급운동’ 이라는 이름으로 청년 학생들이 하기 방학에 고향으로 내려가 한글을 가르치도록 하는 문자보급, 문맹퇴치운동이 일어났다.

경과 및 결과

이 운동을 통해 한글 원본, 문자보급 교재 등을 민중에게 보급하고, 학생계몽대를 조직하여 지방으로 내려가 강연과 교육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를 통해 약 1만 명이 한글을 해독하게 되는 성과를 올렸으며, 심훈의 소설 「 상록수」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35년 이후 조선총독부에 의해 금지됨으로써 위축되었다.

1920년대 조선인의 문맹률이 90%에 이를 정도로 높은 현실에서, 학교교육 기회의 혜택을 받은 학생들에게 “동리 무식한 사람들과 학교에도 못가는 아이들에게 국문이라도 가르쳐주어야 한다.”는 민중 교화의 책임을 부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의 언론사는 “자기의 향리의 산천이나 향리의 인민의 생활을 관찰하여 문장으로 서술하여 보는 습관을 기르는 것은 학생 각자에게 심히 중요한 일”이라며 “조선 현실에 관한 지식”을 얻는 기회로 활용하도록 홍보하였다. 언론사의 입장에서 보면 문맹 인구를 줄여 독자층을 확보하고 조선 현실을 기록하여 보고하는 필자층의 연결망을 구축하는 일이기도 하였다.

의의 및 평가

문자보급운동은 한글 철자법을 정리하고 체계화하여 가르치는 활동을 포함하는 것이다. 조선의 말과 글을 과학화하고, 조선의 말과 글에 관한 일체의 연구와 정리 및 이의 실시 보급에 관한 모든 운동의 총체로, 우리 민족문화의 중심 운동으로서 의의를 지닌다고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

논문

허재영, 「일제강점기 한글운동과 문맹퇴치(문자보급) 운동 연구」(『독서연구』 44, 2017)
김현경, 「민중에 대한 빚, 브나르드 운동의 재조명」(『언론과사회』 16-3, 2008)
이혜령, 「신문 브나로드 소설-리터러시의 위계질서와 그 표상」(『한국근대문학연구』 15, 2007)
신용하, 「1930년대 문자보급운동과 브 나로드 운동」(『한국학보』 31-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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