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대학교 명현초상 일괄은 「공자 초상」, 「주자 초상」, 「기자 초상」, 「제갈량 초상」, 「 송시열 초상」 등 중국과 한국의 명현(名賢) 5인의 초상화 5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초상화 상단에는 각 인물의 사적(事蹟)을 적은 글 또는 화상찬(畫像贊)이 적혀 있다.
「주자 초상」에는 주자가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 작성한 「서화상자경(書畫像自警)」이, 「기자 초상」에는 이이(李珥)가 지은 「기자실기(箕子實記)」의 일부가, 「제갈량 초상」에는 남송 학자 장식(張栻, 1133~1180)이 지은 「제갈무후화상찬(諸葛武侯畫像贊)」이, 그리고 「송시열 초상」에는 김창협(金昌協)이 작성한 「우재선생화상찬(尤齋先生畫像贊)」이 적혀 있다. 다만 「공자 초상」에 적힌 글은 이 글의 서자(書者)가 어느 문헌에서 인용한 것인지 혹은 직접 지은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이 다섯 초상화의 각 상단에 적힌 글의 서체(書體)는 모두 동일하다. 그런데 이 중 「기자 초상」의 뒷면에는 “은진후송내희근서(恩津後宋來熙謹書)”란 글이 적혀 있다. 이로 미루어 이 초상화들의 상단에 적힌 글은 모두 송내희가 쓴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그림들의 제작 시점이 언제인지는 명확히 밝히기 어렵다. 다만 각 인물의 묘사에 쓰인 필선의 형태나 채색에 쓰인 안료의 색이 서로 비슷한 데다 복식 주름에 음영을 넣는 방식도 서로 유사해 이 다섯 초상화는 같은 시점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공자 초상」은 관모(冠帽)와 예복(禮服)을 착용하고 홀(笏)을 들고 있는 공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초상화이다. 「주자 초상」은 야복(野服)과 그 형태가 정확하지 않은 사모를 착용한 주자의 반신(半身)을 묘사한 초상화이다.
「기자 초상」에서 기자는 야복을 입고 공수한 채 왼쪽을 향해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초상화의 원본(原本)은 1632년(인조 10)에 평양감사 민성휘(閔聖徽)가 「기자진홍범도(箕子陳洪範圖)」에서 기자의 모습만을 별도로 그려 낸 그림으로 추정된다.
「기자진홍범도」는 기자가 자신을 석방해 준 주나라 무왕(武王)에게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전달하는 내용이 도해된 고사도로, 1606년(선조 39)에 평양감사 서성(徐渻)이 중국에서 원나라 화가 조맹부(趙孟頫)의 작품으로 알고 입수해 평양 인현서원(仁賢書院)에 보관했던 것이다.
「제갈량 초상」에서 제갈량은 와룡관(臥龍冠)과 학창의(鶴氅衣)를 착용하고 오른손에 학우선(鶴羽扇)이라 불리는 부채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다.
「송시열 초상」에서 송시열은 사방모(四方帽)처럼 보이는 모(帽)와 야복을 입은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초상화의 복식 및 얼굴 표현은 황강영당 소장 「송시열 초상」의 것과 매우 유사하다. 이 황강영당 소장본은 18세기 전반에 미상의 작가가 김창업(金昌業)이 1680년(숙종 6)에 그린 송시열 초상화 초본(草本)을 모본(母本)으로 해서 제작한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이 초상화들은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자신들이 추앙한 중국 및 동국 성현들의 초상화를 활발히 제작했으며 또한 이러한 성현 초상화를 서원이나 영당 등지에 봉안하며 그들의 학문적 업적을 기리고 그들의 정신을 이어 받고자 했음을 보여주는 회화 자료이다. 2018년 7월 19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