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노 초상 ( )

회화
작품
1879년(고종 16) 조선 후기의 문신 강노의 71세 때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
작품/서화
창작 연도
1879년(고종 16)
작가
미상
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
내용 요약

강노 초상(姜㳣 肖像)은 1879년(고종 16) 조선 후기의 문신 강노의 71세 때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이다. 강세황의 증손으로 고종 대에 좌의정에까지 오른 강노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인데, 고종 대에 제작된 몇 안 되는 고위 관료의 초상화라는 점과 반신상(半身像)이라는 점에서 회화사적 가치가 크다. 2017년 미국 경매시장에 나온 것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구매하여 국내에 들여왔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정의
1879년(고종 16) 조선 후기의 문신 강노의 71세 때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
내용

강노(姜㳣, 1809~1887)는 18세기에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로 일컬어지며, 당대 예단(藝壇)의 총수로 불리었던 강세황(姜世晃)의 증손(曾孫)이다. 그는 1848년(헌종 14)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흥선대원군이 집정한 이후에 중용되어 1870년대 초반에는 병조판서와 좌의정 등의 고위직에 올랐다.

1873년(고종 10)에 흥선대원군을 탄핵한 최익현(崔益鉉)의 처벌을 주장하였으나, 고종주1한 후에 우의정 한계원(韓啓源)과 함께 파직당하였다. 이후 재등용되었지만 임오군란(壬午軍亂)에 연루되었다는 의심을 받아 경상도 함양으로 유배를 갔다.

「강노 초상」은 그 화면 우측에 “강판부사 정은 기사생칠십일세기묘구월진상(姜判府事 貞隱 己巳生七十一歲己卯九月眞像)”이라 적힌 표제로 인해 강노의 71세 때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이며, 그 제작 시점은 1879년 9월임을 알 수 있다.

형태 및 특징

「강노 초상」에서 강노는 주2와 홍단령(紅團領) 및 서대(犀帶)를 착용한 채, 표범 가죽이 놓인 의자에 앉은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조선시대에 대상 인물이 관복을 착용하고 의자에 앉은 모습으로 묘사될 때 대부분 몸 전체가 그려졌지만, 이 초상화에서는 강노의 반신(半身)만 표현되었다. 이러한 형태는 조선시대 초상화에서 거의 확인되지 않는 것이어서 주목을 끈다.

이 초상화를 그린 화가는 진한 갈색 선으로 강노의 이목구비와 눈 주변 주름들을 분명하고 세세하게 그렸다. 그는 은은한 살색으로 강노의 얼굴을 생동감 있게 채색하였으며, 뺨 · 코 · 눈 주변으로 음영 표현을 정교하게 적용하였다. 또한, 콧등과 그 주변으로는 마마자국까지 세밀하게 표현하였다.

얼굴 윤곽 표현에는 깔끔하고 단정한 느낌을 주는 선들을 조심스럽게 구사한 것과 달리 의복 표현에는 다소 거칠어 보이고 각이 진 선들을 다소 대담하게 썼다. 또한, 얼굴에는 미묘하게 음영 표현을 넣어 얼굴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만든 데 반해 의복에는 거의 음영을 적용하지 않아 의복은 매우 평면적으로 보인다.

이 초상화의 화풍은 철종(哲宗)고종(高宗)어진(御眞), 김정희(金正喜)의 초상화 등을 제작하였던 이한철(李漢喆)이 구사한 것과 유사하다. 따라서 이 초상화의 작가는 이한철이거나 혹은 그와 유사한 초상화풍을 썼던 도화서(圖畵署) 출신 화원일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 및 평가

고종 대에 제작된 드문 사례의 고위 관료의 초상화란 점과 대상 인물의 반신만 그려진 교의좌상(交椅坐像)이라는 형식적 측면에서 회화사적 의의가 있다.

「강노 초상」은 미국의 경매시장에 출품된 것을 국외소재 문화재재단이 31만 달러[2022년 11월 환율 기준, 약 4억 3,431만 원]에 낙찰받았고, 2017년 12월 8일 국내로 들여와 국립중앙박물관에 이관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강민첨(姜民瞻), 강현(姜鋧), 강세황, 강인, 강이오(姜彛五)의 초상화와 함께 「강노 초상」까지, 진주강씨 5대의 초상화가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표암 강세황- 시대를 앞서 간 예술혼』(국립중앙박물관, 2013)
변영섭, 『豹菴姜世晃繪畵硏究』(일지사, 1988)

인터넷 자료

국립중앙박물관 2018년 8월 서화실 주제전시(https://www.museum.go.kr/site/main/archive/united/14389)
주석
주1

임금이 직접 나라의 정사를 돌봄.    우리말샘

주2

고려 말기에서 조선 시대에 걸쳐 벼슬아치들이 관복을 입을 때에 쓰던 모자. 검은 사(紗)로 만들었는데 지금은 흔히 전통 혼례식에서 신랑이 쓴다.    우리말샘

집필자
이성훈(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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