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후기에 제작된 조선 전기의 문신 홍경주의 초상화와 제작 초본 및 그 보관함.
제작 배경
홍경주의 후손들이 1506년에 제작된 홍경주 초상의 이모본(移模本) 제작을 의뢰하였다.
내용
이 초본은 유지에 목탄으로 윤곽을 잡아 그린 것이다. 현재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세 부분으로 분리되어 있다. 또한 「홍경주 초상」의 보관을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함도 이 초상화와 함께 전하고 있다.
형태 및 특징
「홍경주 초상」의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의 형식은 이 세 초상화의 것과 거의 동일하다. 네 초상화에서 각 인물은 모두 동일한 형태의 의자에 앉은 채 공수 자세로 왼쪽을 향한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방석을 붙들기 위해 교의에 매듭을 한 방식이나 단령의 트임 사이로 단령의 안감과 단령 안에 입은 첩리(帖裏)를 겹겹이 나타나게 하고 그 사이로 패도(佩刀)를 그려 넣은 방식은 네 초상화에서 모두 확인된다. 그리고 이 네 초상화 중 「유홍 초상」을 제외한 세 초상화에는 그 이전 시기에 제작된 공신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채전(彩氈)이 표현되어 있다.
「홍경주 초상」에서 홍경주는 정3품 관리의 것인 운안(雲雁) 문양의 흉배가 부착된 단령을 착용하고 있다. 홍경주는 정국공신에 녹훈되기 바로 직전에 정3품의 승정원 동부승지에 임명되었다. 그런데 그는 허리에 정1품직의 것인 서대(犀帶)를 착용하고 있다. 아마도 이 초상화 제작 시에 홍경주 후손의 주문을 받아 화가가 품대를 서대로 바꾸어 그렸던 것으로 추측된다.
「홍경주 초상」의 화가는 갈색 선으로 이목구비의 윤곽을 그리고 은은한 살색으로 채색한 뒤에 뺨 부분에 홍색을 덧입히는 방식으로 홍경주의 얼굴을 표현하였다. 수염은 필선을 반복해 구사하는 방식으로 묘사하였다. 단령에는 주름이나 굴곡에 상관 없이 획일적이고 평면화된 모양으로 운두문(雲頭文)을 그렸다.
이 초상화가 조선 후기의 이모본으로 추정되는 가장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족좌대 위에 갖가지 색으로 부분 채색된 화문석 때문이다. 이러한 종류의 화문석 표현은 18세기 이후에 제작된 초상화에서 본격적으로 확인된다.
「홍경주 초상」은 전체적으로 그림 상태가 매우 좋다. 얼굴, 관복, 채전 등의 표현에서 정교한 필치 구사나 채색법을 확인할 수 있어, 기량이 뛰어난 화가에 의해 이모된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편, 『조선의 공신』(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2)
- 조선미, 『한국의 초상화-형(形)과 영(影)의 예술』(돌베개, 2009)
논문
- 윤진영, 「조선시대 공신화상의 신례(新例)」(『조선의 공신』,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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