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산(安山)이다. 자는 자상(子常), 호는 희원(希園, 喜園) · 송석(松石)이다. 의과(醫科), 운과(雲科), 역과(譯科) 등에서 합격자를 다수 배출한 중인 가문 출신이다. 아버지는 화원으로 활동한 이의양(李義養)이며, 이한철 또한 대를 이어 화원이 되었다. 오세창(吳世昌)의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에는 이한철의 출생 연도가 1808년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유복렬(劉復烈)의 『한국회화대관』에는 1812년으로 되어 있다. 사망 연도는 미상이나,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와 여러 의궤에서 1880년(고종 17)까지 공적으로 활약한 사실이 확인된다.
이한철의 화원으로서 활동이 확인되는 가장 이른 기록은 1830년의 『효명세자예장도감의궤(孝明世子禮葬都監儀軌)』로, 이방(二房) 화원으로 기록되어 있다. 1838년부터 1872년까지는 규장각 차비대령화원으로 활동하면서 궁중의 다양한 사업에 종사하였다. 그의 활약이 가장 돋보인 분야는 어진 제작이다. 1837년, 태조 어진의 모사를 위한 영정모사도감(影幀模寫都監)에 동참화사(同參畫師)로 참여하였다. 이어서 1846년의 헌종 어진 제작, 1852년 및 1861년의 철종 어진 제작, 1872년의 고종 어진 제작에 주관화사(主管畵師)로 참여하였다. 이한철이 제작한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초상화 5점[서울역사박물관]은 모두 뛰어난 격조를 지녔으며, 고종 대를 대표하는 초상화이다. 이한철의 초상화는 정교하고 화려한 표현으로 높은 예술성을 보이며, 특히 안면 전체에 걸쳐 묘사된 섬세하고 치밀한 육리문(肉理紋)이 특징이다.
당시에 유행한 문인화풍의 산수화도 여러 점 남겼는데,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영향이 간취된다. 1849년에 김수철(金秀哲) · 허련(許鍊) · 전기(田琦) 등과 더불어 김정희에게 3회에 걸쳐 작품 품평을 받았으며, 김정희 사후에 관복본(官服本) 초상화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1872년 고종 어진을 제작한 상전(賞典)으로 영춘(永春, 지금의 충청북도 단양군) 현감에 제수되었으며, 1874년에 포천 현감, 1875년에 용안(龍安,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현감, 1878년에 진위(振威, 지금의 경기도 평택시) 현령에 제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