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665년(현종 6) 조세걸이 그린 박장원의 54세 때 초상화와 그 보관 상자.
제작 배경
내용
이 자찬문의 끝에는 정조(正祖) 대에 활약한 서예가 조윤형(曺允亨)이 그 글씨를 썼음이 밝혀져 있다. 그런데 나머지 두 군데에 적힌 글씨의 서풍이 자찬문의 것과 동일해 상기의 글은 모두 이 초상화가 그려진 지 100여 년 후에 조윤형에 의해 서사된 것으로 보인다.
초상화를 제작한 6년 뒤인 1671년에 작성된 이 자찬문은 4자씩 구를 이룬 총 32자로 되어 있는데, 3자씩 구를 이룬 총 24자의 주자의 「사조명」을 염두에 두고 박장원이 작성한 글로 여겨진다.
박장원이 주자의 「사조명」을 읽고 그 감회를 술회한 일, 자신의 초상화를 제작한 일 그리고 화상찬을 지은 일은 비록 15년 동안의 긴 기간에 걸쳐 이루어졌지만, 이 일들은 모두 주자가 44세에 초상화를 제작하고 찬문을 쓴 일을 염두에 두고 진행한 행위들로 보인다. 이 사실은 조선시대에 일부 사대부들의 초상화 제작이 주자가 자신의 초상화를 제작해 자기 성찰의 도구로 삼은 것을 본받은 행위였음을 보여준다.
「박장원 초상」과 함께 전하는 목재함은 짜임이나 경첩의 제작기법으로 보아 이 초상화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형태 및 특징
얼굴 표현에서도 같은 시기에 제작된 공신상과는 달리 음영 표현이 매우 모호하게 처리되어 있는데, 특히 코와 눈 부분에서 그러한 점이 두드러지게 확인된다. 그 결과 특히 코 부분에서 살필 수 있듯이 박장원의 얼굴은 입체적이지 않고 매우 평면적으로 보인다.
1680년(숙종 6) 이후 조세걸은 보사공신(保社功臣)의 공신상 제작에 참여하는가 하면 1695년 숙종 어진 도사 시에 주관화사로 발탁되기도 했다. 이 시기에 그는 주로 정면상을 그렸으며 중국의 초상화풍을 적극 수용해 능숙하게 음영을 표현하였다.
그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는 경기도박물관 소장 「박세채 초상(관복본 초상)」이나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이만원 초상」은 그가 1680~1690년대에 구사했던 초상화풍을 잘 보여준다. 이로 미루어 「박장원 초상」은 조세걸이 자신만의 고유한 초상화풍을 창출하기 이전, 즉 활동 초기에 제작한 초상화일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구당선생집(久堂先生集)』
단행본
- 『고령박씨 기증유물 특별전-박문수 천안에 잠들다』(천안박물관, 2011)
논문
- 이성훈, 「조선 후기 사대부 초상화의 제작 및 봉안 연구」(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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