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령동부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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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단체
1895년 황해도 재령군 재령읍 수창리에 설립된 장로교회.
이칭
이칭
남산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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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895년 황해도 재령군 재령읍 수창리에 설립된 장로교회.
연원 및 변천

재령동부교회는 전도인 김백영의 전도활동으로 약 80여 명의 신자들이 생기자 평양여학교 교사였던 송정신이 기와 8칸을 헌납하여 1895년 예배당으로 설립된 교회이다. 천주교인들의 박해로 한동안 예배가 중단되었으나 송정신이 교사직을 사임하고 내려와 정찬유, 김익수, 김두찬, 최석호 등과 협력하여 교세를 확장하였다. 설립 당시에는 남산현교회라고 하였는데, 교세가 확장하여 1922년 서부교회를 분립하면서 재령동부교회라고 하였다. 1938년에는 재령동부교회와 재령서부교회로부터 재령중앙교회가 분립하였다. 재령은 황해도 전체를 담당하는 선교 지부였기 때문에 재령동부교회는 황해도 전체의 모교회와 같다. 재령동부교회는 1907년 김창일, 1911년 박태로, 1912년 정찬유, 1914년 박태환, 1918년 박재환, 1922년 임재형, 1938년 정두영 등을 차례로 장로로 장립하였다. 재령동부교회는 교육사업에도 크게 관여하여, 1898년 명신학교를 설립하였다. 1907년 정찬유의 설계로 십자가 예배당을 건축하고, 김창일을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였을 때 재령동부교회 예배당은 명신학교의 교사로도 활용하였다.

1912년 남산 기슭에 새 교사를 마련하여 옮겼고, 그 후 지속적인 재령동부교회의 후원으로 1938년 5년제 정규 남녀학교로 전국에서 손꼽히는 기독교명문학교로 발전하였다. 이후 남학교인 명신중학교와 여학교인 명신고등여학교로 분리되었다. 재령동부교회와 깊은 인연이 있었던 선교사들로는 헌트(W. B. Hunt, 한위렴), 샤프(C. F. Sharp, 사우업), 쿤스(E. W. Koons, 군예빈), 커(W. C. Kerr, 공위량), 휘팅(H. C. Whiting, 황호리), 매키(A. M. Mackee, 기아), 매큔(C. A. McCune, 윤가태) 등이 있었으며, 이들은 전도 및 교육 사업을 이끌었다.

1912년 6월 28일 제2회 황해노회가 재령동부교회에서 개최되면서 장로로 장립을 받은 정찬유 장로는 한국 교회 사상 가장 많은 교회를 짓고 후원한 것으로 유명한 재령동부교회 장로이며, 1931년 한국장로회총회가 인준하여 중국 산둥성으로 파송한 한국인 최초의 여성 해외선교사 김순호를 재령동부교회 출신의 대표적인 인물로 들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기독교의 역사』Ⅱ(한국기독교역사학회,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12)
『황해도교회사』(이찬영, 소망사, 1995)
『한국장로신문』(2007.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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