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창병원 ()

개신교
단체
간도 용정에 설립된 캐나다 장로회 소속의 기독교 병원.
정의
간도 용정에 설립된 캐나다 장로회 소속의 기독교 병원.
설립목적

캐나다장로회 한국 선교부는 1910년대 이후 간도로 이주한 다수의 한국인들을 위해 용정에 선교지부를 개설하고 의료 선교 사업을 실시하려는 목적으로 제창병원을 설립하였다.

연원 및 변천

용정에서의 의료사업은 의료선교사 마틴(S. H. Martin, 閔山海) 부부에 의해 1915년부터 시작되었다. 1916년 11월부터는 병원신축을 시작하여, 1918년 30개의 병상을 갖춘 현대식 병원으로 남녀입원실과 수술실, X선 촬영실 등을 마련하였다. 제창병원은 개원 후 2년 만에 연간 1,200여 명의 환자를 진료할 정도로 성장하였으나 1920년대 들면서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1927년 마틴 의사가 세브란스로 옮겨가자 그 후임으로 중국에서 활동하던 블랙(D. M. Black, 陸長安) 의사가 부임하여 민주국이 설립되면서 일제에 의해 강체 추방되는 1940년까지 활동하였다. 이후 병원은 문을 닫게 되었다.

기능과 역할

제창병원은 선교를 목적으로 설립된 기독교 병원으로 한국인을 포함하여 중국인, 일본인, 러시아인을 대상으로 의료사업을 전개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한국인들의 민족자주권을 수호하는 데도 크게 기여하였다. 3·1운동 및 일본군의 한국인 학살사건을 통해 그는 한국인 구휼에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여 만주에 있는 한국인들로부터 은인이란 칭호를 받게 되었다. 3월 13일 용정 만세운동 때 중국군이 시위 군중에게 발포하여 17명이 사망하고, 30여명이 부상당했는데 이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한편 사상자의 몸에서 빼낸 탄환이 모두 일본제 탄환임을 확인하고 중국군 배후에서 일본 군인들이 조종한 사실을 입증하였다. 1920년 10월 일본군이 서북간도 독립군을 토벌한다는 핑계로 이 지역 양민들을 무차별 살육할 때에도 그는 자전거로 돌아다니며 부상자를 치료하는 한편 일제의 만행 현장을 사진으로 찍어 세계에 폭로하는데 앞장섰다. 이를 통해 마틴과 제창병원은 만주지역에 사는 중국인과 한국인에게 널리 알려져 기독교 선교에도 도움이 되었다. 특히 제창병원은 폐결핵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치료에서 커다란 성과를 보이며 폐결핵 퇴치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과 제창병원은 간도 일대 굴지의 병원이 되었다.

참고문헌

『한국기독교의료사』 (이만열, 아카넷, 2003)
“Mission Hospitals in Korea: 8. St. Andrew’s Hospital, Lunchingtsun, Manchukuo”(D. M. Black, The Korea Mission Field, 1937. 5)
“Correspondence”(S. H. Martin, The Korea Mission Field, 1919. 5.)
집필자
이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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