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조선기독청년동맹은 1945년 8월 19일 창립된 장로교·감리교 기독청년들의 연합조직이다.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결성된 이 조직은 김구·김규식 등 중도파를 지지하며 신탁통치와 단정수립에 반대했다. 귀환동포를 위한 모금 및 숙식 제공, 해방 기념 예배, 미군 환영 행사 등의 활동을 펼쳤다. 1946년 좌우합작운동과 남북협상을 지지하였다. 1947년 세계기독청년대회, 1948년 세계교회협의회(WCC) 창립총회에 대표를 파견하는 등 국제 연대도 모색했다. 1948년 교파환원 결정으로 해산되었지만, 해방 후 최초의 기독청년 연합단체로서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수행했다.
정의
1945년 8월 19일 창립된 장로교·감리교 기독청년들의 연합조직.
개설
설립목적
연원 및 변천
조선기독청년동맹은 같은 해 11월 조선기독청년회전국연합회(朝鮮基督靑年會全國聯合會)로 개칭하였다. 임원진은 회장 김규식(金奎植), 부회장 이강훈(李康勳)·엄요섭(嚴堯燮), 총무 김희운(金熙運), 임원 강원용(姜元龍)·노세우(盧世愚)·맹기영(孟基永)·신충현(申忠鉉)·윤판석(尹判石)·이명하(李明河)·이태현(李台現)·조향록(趙香錄) 등이었는데, 환국한 중경(重慶)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다수 참여하였다.
기능과 역할
이후 조선기독교청년회전국연합회로의 개칭을 전후하여 민족의 완전 독립을 목표로 하여 임시정부 봉대(奉戴)와 신탁통치 반대, 3·8선 철폐 등을 주장하였다. 1946년 6월 김규식과 여운형(呂運亨)을 중심으로 진행된 좌우합작운동을 지지했으며, 기독교신민회(1945. 12)·독립촉성기독교중앙협의회(1945. 12)·그리스도교연맹(1947. 7)·기독교민주동맹(1947. 12) 등과는 달리 김구·김규식의 중도파를 지지하였다. 아울러 연합회는 기독청년단체로는 유일하게 단정수립을 반대하고 남북협상을 지지했으며, 임원들 중심의 기독교청년연합회동지회를 별도로 운영하였다.
연합회는 1947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개최된 제2회 세계기독청년대회에 엄요섭(장로교)과 오창희(감리교) 등을, 194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창립총회에 엄요섭을 파견하는 등 세계 기독청년단체와의 연대도 모색하였다. 그러나 1948년 새문안교회에서 열린 총회에서 교파환원(敎派還元)이 결정되면서 연합조직으로서의 성격을 잃고 해산되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기독교의 역사』Ⅲ(한국기독교역사학회 편, 기독교문사, 2009)
- 『한국기독교 해방십년사』(김양선,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종교교육부, 1956)
- 윤원호 증언(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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