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0년대에 형성된 망월동의 구산(龜山) 신앙 공동체에 연원을 두고 있는 성당으로, 주보는 「도움이신 성모」와 「성 김성우 안토니오」이다. 1979년 6월 22일 구산성당으로 설립되었으며, 관내에 1841년의 순교자 김성우(金星禹, 안토니오) 성인의 무덤이 안치된 구산성지가 있다.
옛 경기도 광주 땅이던 하남시 망월동에 천주 신앙이 전파된 것은 1830년대로, 처음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김성우 성인의 형제들이었다. 이후 그들 형제의 선교활동으로 구산에는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1839년 이전에는 파리외방전교회(M. E. P.) 선교사 모방(P. Maubant, 羅 베드로) 신부에 의해 구산공소(龜山公所)가 설정되었다. 그러나 이 해에 일어난 기해박해(己亥迫害)로 김성우와 아우인 김덕심(金德深, 아우구스티노)이 체포되어 순교하였고, 1866년 이후의 병인박해(丙寅迫害) 때는 성우의 아우 김윤심(金允深, 베드로 알칸타라)과 외아들 김성희(金聖熙, 암브로시오)가 다시 순교하였다.
박해가 끝난 뒤 구산 신앙 공동체는 약현성당(현 중림동성당), 종현성당(현 명동성당), 백동성당(현 혜화동성당)의 사목 관할 아래 있다가 1948년 이후 서울 신당동성당, 1958년 이후 천호동성당 소속이 되었다. 또 1963년 수원교구가 설정되면서 서울대교구에서 새 교구 소속으로 이전된 뒤 신장성당의 공소가 되었다. 이에 앞서 순교자 김성우는 1925년에 복자(福者)로 시복되었으며, 1927년 5월에는 구산의 망월동 387번지에 있던 그의 무덤에서 유해가 발굴되어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로 이장되었다. 구산 공소 신자들은 이후에도 복자 김성우의 무덤을 잘 보존해 오다가 1949년 5월 30일에는 무덤 앞에 순교 기념비를 건립하였고, 이것이 현재의 ‘구산성지’이다.
1979년 6월 22일 구산공소는 성당으로 승격되어 초대 주임으로 길홍균(吉鴻均, 이냐시오) 신부가 부임하였다. 이후 길홍균 신부는 1956년 5월에 신축된 공소 경당을 보수하여 구산성당으로 사용하면서 새 성당 신축 계획을 수립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대신에 길 신부는 김성우 안토니오의 무덤 일대를 성지로 개발하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 1980년에는 2대 수원교구장 김남수 주교의 집전(執典)으로 구산성지 축복식이 거행되었다. 또 4년 뒤인 1984년 5월 6일에는 복자 김성우가 성인으로 시성되면서 구산성지의 성역화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현재 구산성당에는 14대 주임 최병용(마티아) 신부가 사목하고 있으며, 구산성지는 초대 담임 정종득(바오로) 신부가 사목하고 있다. 구산성당의 사목 관할 구역은 하남시 망월동 · 미사동과 풍산동 · 덕풍동 일부 지역으로, 이곳 출신 순교자들 가운데 김덕심과 김윤심 형제, 김성우 성인의 외아들 김성희는 현재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되어 시복 시성이 추진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