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평안남도 평양시 대신리(大新里)에 있던 천주교 평양대목구 소속 침묵의 성당.
개설
연원 및 변천
1938년 9월 2대 주임으로 부임한 듀피(P. Duffy, 都 파트리치오) 신부는 성당의 안정에 노력하던 중 1941년 12월 8일 태평양전쟁이 발발함과 동시에 동료 선교사들과 함께 연금되었다가 다음해 미국으로 강제 송환되었다. 이에 따라 1942년 2월에는 김필현(金泌現, 루도비코) 신부가 3대 주임으로 부임하였으며, 1944년 4월에는 그 뒤를 이어 서울대목구의 조인원(趙仁元, 빈첸시오) 신부가 4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가 동년 11월 서울로 복귀하였다. 이 해에 신리성당의 이름은 ‘대신리성당’으로 개칭되었다.
조인원 신부의 뒤를 이어 5대 주임으로 부임한 박용옥(朴龍玉, 디모테오) 신부는 일제 말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1945년의 광복을 맞이하여 신심 단체와 공소의 활성화에 노력하였다. 그러나 소련군의 진주로 다시 어려움을 겪어야만 하였고, 1948년에는 북한 공산 정권의 탄압으로 동평학교가 몰수되었으며, 이듬해 12월 7일에는 박 신부가 체포되면서 성당이 폐쇄되었다. 이후 대신리성당은 1950년 10월 유엔군이 평양을 탈환했을 때 듀피 신부가 다시 부임하여 문을 열고 12월 2일까지 사목하였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듀피 신부와 많은 신자들이 월남함으로써 침묵의 교회가 되었다.
현황
참고문헌
- 『북녘 땅의 순교자들』(평양교구 순교자사료수집위원회 편, 가톨릭출판사, 1999)
- 『한국가톨릭대사전』3(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교회사연구소, 1996)
- 『천주교 평양교구사』(평양교구 편찬위원회 편, 분도출판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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