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황해도 송림시 산서리(山西里)에 있던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침묵의 성당.
개설
연원 및 변천
이후 유재옥 신부는 지역 선교 활동과 함께 성당과 사제관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 12월 3일에는 이를 완공하고 라리보 주교의 집전으로 성당(연와조 83평) 봉헌식을 가졌다. 동시에 겸이포성당은 유재옥 신부의 활발한 사목활동으로 청년회·성가대 등 평신도 단체가 활성화되고 관할 10여 개 공소도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그러던 중 태평양전쟁 발발한 직후인 1941년 12월 8일 유 신부는 미국인 선교사들과 내통하여 제철소의 기밀을 탐지했다는 혐의로 일제 총독부에 의해 체포 감금되었으며, 5개월 동안 옥고를 치른 다음해 4월 18일에 석방되었다. 또 성당 건물은 1945년 7월 17일 총독부의 강압에 의해 잠시 식민지 교육의 장소로 이용되었다.
광복 이후 소련군정이 시작되고 이어 북한 공산정권이 수립되면서 유재옥 신부와 신자들은 위협을 느꼈지만, 유재옥 신부는 모든 것을 감수하면서 사목에 열중하였다. 또 시간이 지나면서 위험이 커지자 신자들이 자주 성당을 찾아가 유 신부에게 남하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유 신부는 이를 거절하였으며, 대신 성당에 있던 이계광(李啓光, 요한) 부제와 김창린(金昌麟, 필립보) 신학생에게 남하를 지시하였다. 유 신부는 1950년 6월 24일 밤에서 25일 새벽 사이에 정치보위부원들에게 납치되었고, 해주 교화소로 이송되었다가 10월 5일 해주 해변 모래사장에 생매장되었다. 유 신부가 납치됨으로써 송림성당은 폐쇄되었다.
현황
참고문헌
- 『한국가톨릭대사전』7(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교회사연구소, 1999)
- 『황해도천주교회사』(한국교회사연구소 편, 황해도천주교회사 간행사업회,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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