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동성당 ()

천주교
단체
전라남도 목포시 산정동(山亭洞)에 있는 천주교 광주대교구 소속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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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목포시 산정동(山亭洞)에 있는 천주교 광주대교구 소속 성당.
개설

광주대교구 최초의 성당으로, 1897년 5월 8일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의 수류(水流)성당에서 분리 설립되었다. 처음 이름은 목포성당이었으나 1951년 경동(京洞)성당을 분리함과 동시에 산정동성당으로 개칭되었다. 주보는 「대천사 미카엘」이다.

연원 및 변천

1890년대 중반까지도 전라도 남부 지역에 흩어져 있는 천주교 신앙 공동체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의 수류성당에 속해 있었다. 이에 제8대 조선대목구장 뮈텔(G. Mutel, 閔德孝 아우구스티노) 주교는 1897년 5월 8일자로 전라남도 지역을 수류성당에서 분리하여 새 성당 관할 지역으로 설정함과 동시에 파리외방전교회(M. E. P.)의 데예(A. Deshayes, 曺有道 알베르토)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였다. 이때 데예 신부는 우선 순창의 아천리(阿川里, 현 전북 순창군 쌍치면 운암리)에 임시 거처를 두고 생활하다가 이듬해 현재의 산정동 부지를 매입하고, 1898년 7월 2일 이곳으로 거처를 이전하여 ‘목포성당’을 설립하였다. 그는 이후 연와제 소성당을 완공하고 여러 신심 단체를 구성하였으며, 도서 지역 선교에도 노력하였으나, 1901년에는 지도교안(智島敎案)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이에 앞서 목포성당에서는 1899년 7월 무안 우적동(牛跡洞)성당(현 몽탄면 사천리, 노안성당의 전신)을 분가하였다.

3대 주임 샤르즈뵈프(S. Chargeboeuf, 宋德望 스테파노) 신부는 1913년 12월 25일 새 성당을 완공하여 봉헌식을 가졌고(주보는 「성 십자가 현양」), 6대 주임 주재용(朱在用, 바오로) 신부는 1926년에 성심소학교(聖心小學校)를 설립하였다.[1950년 폐교] 또 성 골롬반외방선교회(S. S. C.)의 8대 주임 모나간(P. Monaghan, 牟 파트리치오) 신부는 1941년 태평양전쟁으로 일제 총독부에 의해 체포될 때까지 7년여 동안 재임하면서 1935년에 강당 겸 교리실을 건립하고 선교에도 노력하였다. 이에 앞서 목포성당은 1911년 대구대목구가 설정되면서 새 대목구 소속이 되었다가 1937년 4월 13일 광주지목구가 설정되면서 여기에 속하게 되었다.

14대 주임 모란(T. Moran, 安 토마스) 신부 재임기인 1951년 4월 9일 목포성당은 경동성당을 분가함과 동시에 ‘산정동성당’으로 개칭되었다. 1953년 3월 31일에는 한국 천주교 최초로 레지오 마리애 운동을 도입하였고, 17대 주임 둔(J. Dunne, 도 요한) 신부 재임기인 1958년 9월 3일에는 북교동성당을, 같은 해 11월 11일에는 흑산도성당을 분가하였다. 20대 주임 브라질(J. Brazil, 진 요한) 신부 재임기인 1966년 5월 29일에는 현재의 성당을 완공하여 봉헌식을 가졌으며(주보는 「대천사 미카엘」), 1968년에는 연동성당을, 1971년에는 대성동성당을 분가하였다. 그리고 1998년 5월 23일에는 1년 6개월 동안의 공사 끝에 한국 천주교 레지오 마리애 기념관을 완공하였다.

현황

역대 신부 중에서 한국전쟁 때 순교한 13대 주임 쿠삭(T. Cusack, 高 토마스) 신부와 당시의 보좌 오브라이언(J. O'Brien, 吳 요한) 신부는 현재 한국 천주교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되어 시복 시성이 추진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가톨릭대사전』6(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교회사연구소, 1998)
『광주대교구 50년사』(천주교 광주대교구 편, 빛고을출판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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