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색성당 ()

천주교
단체
서울특별시 은평구 증산동에 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성당.
목차
정의
서울특별시 은평구 증산동에 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성당.
개설

1909년에 설립된 경기도 행주성당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1957년 성당이 서울시 수색동으로 이전되면서 수색성당으로 개칭되었다. 설립 이래 서울대교구 서쪽 지역의 모성당(母聖堂) 역할을 해왔다. 성당 주보는 「예수 성심」이다.

연원 및 변천

수색성당의 역사는 1909년 5월 26일 서울의 약현성당(현 중림동성당)에서 분리 설립된 경기도 고양군(현 경기도 고양시)의 ‘행주성당’(幸州聖堂)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행주에 부임한 초대 주임 김원영(金元永, 아우구스티노) 신부는 공소 순방을 시작하면서 고양군 지도면 행주외리(현 고양시 덕양구 행주동)에 성당 부지를 마련한 뒤 그곳에 있던 가옥들을 성당과 사제관으로 개조하였다(성당 주보는 「성모 승천」). 당시 성당의 사목 관할 구역은 고양군을 비롯하여 김포·통진·양천·양주군 등이었다. 그러나 행주성당은 1942년 이후 주임 신부의 공석기간을 거쳐야만 했으며, 광복 이후인 1948년 2월 김성환(金成煥, 빅토리노) 신부가 9대 주임으로 임명되면서 재설립되었다.

한국전쟁 이후인 1953년 11월 10대 주임으로 부임한 임충신(林忠信, 마티아) 신부는 행주성당 인근 지역의 신자 수가 감소하자 1957년 6월 14일 서울시로 편입된 지 얼마 안 된 수색동(水色洞) 205번지에 성당 부지를 마련한 뒤 그곳으로 성당을 이전하였다. 이후 ‘수색성당’에서는 1968년 8월에 응암동성당을 분가했으며, 12대 주임 김윤상(金允相, 베네딕토) 신부 재임기인 1970년에는 현 증산동(甑山洞) 부지를 매입한 뒤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에 이를 완공하고 8월 12일 새 성당(건평 232평) 봉헌식을 가졌다. 또한 1971년 9월 17일에는 두 번째 자성당(子聖堂)으로 가좌동성당을 분가하였다.

1981∼1982년 수색성당은 성당의 기원이 행주 지역을 사목 관할로 하고 있던 능곡공소의 경당 신축과 성당 승격을 도와주었으며, 16대 주임 김창훈(金昌薰, 바오로) 신부 재임기인 1990년 5월 26일에는 현재의 성당을 완공한 뒤 「예수 성심」을 주보로 정하고, 교구장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의 집전 아래 성당 봉헌식을 가졌다. 또 19대 주임 김득권(金得權, 굴리엘모) 신부 재임기인 1998년 9월 25일에는 세 번째 자성당으로 신사동성당을 분가하였고, 22대 주임 남국현(南國鉉, 사도요한) 신부 재임기인 2008년 5월 1일에는 경기도 고양지구의 향동·덕은·화전·현천동 지역 신자들(445명)의 교적을 의정부교구 행신 1동 성당으로 이관하였으며, 2010년 2월 25일에는 네 번째로 상암동성당을 분가하였다. 이에 앞서 수색성당에서는 2009년 5월 24일 서울대교구장 정진석(니콜라오) 추기경의 집전 아래 성당 설립 100주년 기념 미사를 봉헌하였다.

참고문헌

『한국가톨릭대사전』 8(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교회사연구소, 2001)
『서울대교구 교구총람』(한국교회사연구소 편, 가톨릭출판사, 1984)
수색본당(aos.catholic.or.kr/susaek)
집필자
차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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