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천주교 성당은 공산 정권 수립과 한국전쟁 과정에서 모두 폐쇄되어 침묵의 성당이 되었다. 이후 남한 천주교회에서 북한 지역의 천주교와 신자에 대해 즉 ‘북한 선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984년에 예정된 한국 천주교회 설립 200주년 기념사업을 구상하면서부터였다. 그 결과 1982년 12월 10일에는 2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안에 북한 선교부(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의 전신)가 설립되었으며, 1984년 3월에는 캐나다 국적을 가지고 있던 고종옥(高宗玉, 마태오) 신부가 휴전 이후 한국인 사제로는 최초로 북한을 방문하였다.그리고 다음해 9월에는 원주교구장 지학순(池學淳, 다니엘) 주교가 북한을 방문하여 평양의 고려호텔에서 한국 순교 성인들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였다.
1987년 6월 교황청 대표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한 장익(張益, 십자가의 요한) 신부가 조선기독교도연맹의 도움으로 북한의 천주교 신자들을 만났다.당시 북한도 여기에 호응하여 1987년 10월 성당건립위원회를 구성하였고, 당국의 허락 아래 선교 구역인 장충동에 성당 터를 마련한 뒤 1988년 3월부터 공사를 시작하였다. 동년 10월 9일 ‘장충성당’(건평 151평)을 완공했고, 10월 12일 여기에서 첫 기도 모임을 가졌다. 그리고 10월 30일에는 교황청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한 장익 신부와 정의철(鄭義哲, 다마소) 신부가 장충성당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이에 앞서 북한 신자들은 1988년 6월 30일 ‘조선천주교인협회’(1998년 ‘조선가톨릭협회’로 개칭됨)를 결성하였고, 주일마다 신자 회장 박경수(바오로)의 주관 아래 장충성당에서 공소 예절을 봉헌하기 시작하였다.
1989년에는 북한을 방문한 남한 천주교 대표들이 평양 신자들과 함께 장충성당에서 합동 미사를 봉헌하였고, 6월에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사제들이 평양의 장충성당과 남한의 임진각에서 동시에 통일 염원 미사를 봉헌하였다. 이어 1996년 4월의 예수부활대축일에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평화 통일 기원 미사’가 남한의 명동대성당과 북한의 장충성당에서 동시에 봉헌되었으며, 1998년 4월의 부활대축일에는 명동대성당, 장충성당, 미국 뉴욕의 오렌지한인성당 세 곳에서 ‘남북의 화해와 이산가족 재회를 기원하는 미사’가 동시에 봉헌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5월에는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의 최창무(崔昌武, 안드레아) 위원장 주교 등 사제와 평신도 7명이 분단 이후 최초의 사목적 방문단으로 장충성당을 방문하여 미사를 봉헌하였다.
이와 같이 장충성당은 1988년 이후 현재까지 3천여 명으로 추산되는 북한의 천주교 신자들과 남한 천주교회는 물론 로마 가톨릭 교회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해오고 있다. 또한 한국천주교주교회의와 서울대교구의 민족화해위원회, 정의구현전국사제단,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등 남한 천주교회의 대표와 단체들, 해외 한인 천주교회의 사제와 대표 신자들이 북한을 방문할 때마다 기념 미사를 봉헌하거나 방문하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아울러 장충성당을 통한 남한 천주교회의 북녘 동포 돕기 운동도 꾸준히 전개되어 왔으며, 최근에는 상주 사제 파견 문제, 노후화된 성당 재건축 문제,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공동 기도대회 등도 논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