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남포성당 ()

천주교
단체
평안남도 진남포시 용정리(龍井里)에 있던 천주교 평양교구 소속 침묵의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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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평안남도 진남포시 용정리(龍井里)에 있던 천주교 평양교구 소속 침묵의 성당.
개설

1900년 증남포(甑南浦)성당으로 설립되었으며, 1910년 진남포성당으로 개칭되었고, 1950년 10월 북한 공산당에 의해 폐쇄되어 침묵의 성당이 되었다. 성당 주보는 「성 안나」이다.

연원 및 변천

평안남도 삼화부(三和府)에 속하던 대동강 하류의 증남포 지역에는 1897년 10월 개항과 동시에 황해도 신천(信川)성당의 빌렘(J. Wilhelm, 洪錫九 요셉) 신부에 의해 공소(公所)가 설립되었다가 1900년 ‘증남포성당’으로 승격되었다. 이때 초대 주임으로 임명된 파리외방전교회(M. E. P.) 선교사 포리(J. Faurie, 方 요한) 신부는 부임 직후 한옥 성당을 마련하고 돈의학교(敦義學校)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이어 1906년에 부임한 2대 주임 르레드(J. Lereide, 申 율리오) 신부는 1908년에 서양식 성당을 신축했으며, 이듬해에는 지정여학교(智貞女學校)를, 1914년에는 마리아유치원을 설립하였고, 학교 운영을 위해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수녀들을 초청하였다. 그러던 중 르레드 신부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프랑스로 귀국하면서 신부의 자리는 공석이 되었고, 돈의학교와 지정여학교도 1916년에 폐쇄되었다. 이에 앞서 증남포성당은 1910년에 결정된 지역 행정 명칭의 변경에 따라 ‘진남포(鎭南浦)성당’으로 개칭되었다.

1920년 10월 진남포성당은 3대 주임으로 신성우(申聖雨, 마르코) 신부가 부임하면서 재설립되었다. 이듬해 5월 4대 주임으로 임명된 뤼카(F. Lucas, 陸嘉恩 프란스코) 신부는 1921년 마리아유치원 여자부를 분리하여 해성학원(海星學院)으로 개칭하였으며 1917년에는 상장계(喪葬契)를 조직하고 부인회를 설립하였다. 이어 평안도 지역의 사목이 메리놀외방전교회(M. M.)로 이관되면서 1926년 4월에는 더피(P. Duffy, 都 파트리치오) 신부가 진남포성당의 5대 주임으로 부임하였고, 1927년 3월 평양지목구가 설정되고 이듬해 10월 스위니(L. Sweeney, 徐 레오) 신부가 6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진남포성당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우선 그는 1930년에 해성학교 교사를 신축하여 4년제 사립학교로 인가 받았으며, 야학과 아동 교육에 힘쓰는 등 문명 퇴치에 앞장섰고, 시약소(施藥所)와 양로원을 운영하였다. 그리고 신자 수가 증가하자 1933년에 한·양 절충식 성당을 신축하여 봉헌식을 가졌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뒤 스위니 신부가 미국으로 추방되면서 1942년 2월에는 양기섭(梁基涉, 베드로) 신부가 9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이듬해 소화병원(小花病院)을 개설하였다. 그러나 광복 이후인 1945년 10월에 부임한 한윤승(韓允勝, 필립보) 신부 때부터 진남포성당은 공산당의 간섭과 탄압으로 점차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때 소화병원도 폐원되었다. 이후 1948년 10월 11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사목하던 조문국(趙文國, 바오로) 신부가 1950년 6월 25일 공산 정권에 의해 피랍되어 행방불명되었고, 신자들에 의해 간신히 유지되던 성당도 같은 해 10월에 폐쇄되었다.

현황

역대 주임 신부 중에서 조문국 신부는 현재 한국 천주교의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되어 시복 시성이 추진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가톨릭대사전』10(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교회사연구소, 2004)
『북녘 땅의 순교자들』(평양교구 순교자사료수집위원회 편, 가톨릭출판사, 1999)
『천주교 평양교구사』(평양교구 편찬위원회 편, 분도출판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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