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구는 인근의 몇 개 교구를 관할하는 관구의 수석 주교인 대주교가 관할하는 교구를 가리키며, 그 관구에 소속된 교구를 단순히 교구 또는 관구 산하 교구(suffraganea)라고 부른다. 관구는 인접한 교구들끼리 신자들과 지역 사정에 따라 공동 사목 활동을 증진하고 상호 관계가 돈독해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설립되었다.
한국 천주교의 경우 교회 설립 178년 만인 1962년 3월 10일에 와서야 정식 교계제도가 설립되었다. 이는 교계제도 설정과 함께 교구가 설정되기 위해서는 적정 규모의 신자, 본당, 주교좌 성당, 신자 공동체를 이끌 수 있는 사제들, 그리고 이들을 양성하고 교회를 운영하며 교회 활동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과 재원을 갖춰야 하는데, 한국교회가 이를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교계제도 설정에는 1950년 남한 전(全) 교구 주교회의의 결정이 큰 영향을 주었다. 이 결정에 따라 한국교회 대표단이 교황청을 방문하여 교황 비오 12세를 알현하였고, 이때 대주교를 둘 것을 청원하는 내용의 청원서를 교황에게 전달하였다. 그로부터 10여 년 뒤 교황 비오 12세 후임으로 착좌한 교황 요한 23세는 한국교회가 이뤄낸 성장과 발전을 높이 평가하여 「복음의 귀한 씨앗(Fertile Evangelii Semen)」이라는 글귀로 시작하는 교황령(Constitutio Apostolica) 반포를 통해 교계 제도 설정을 인가하였다. 이로써 한국교회에 관구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이 교황령으로 서울, 대구, 광주의 세 대목구가 대교구로 승격하고, 나머지 대목구들이 교구로 승격되었다. 관구로 승격한 대목구 주교들은 대주교로 승품되고, 대목구 체제하에 있던 준본당들은 모두 본당으로 승격하였다.
관구로 승격되지 못한 나머지 교구들은 속(屬)교구로서 세 관구에 배속되었다. 이로써 평양, 함흥, 춘천, 인천, 대전은 서울관구가, 청주와 부산은 대구관구가, 전주교구는 광주관구가 관할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덕원자치수도원구(이전 명칭 덕원 면속구)는 속교구에서 제외되었다. 또한 연길 대목구도 1946년 중국교회에 교계제도가 설정되어 중국 봉천대교구에 속하게 되면서 제외되었다.
관구 체제 출범으로 자동으로 교구가 된 대목구를 제외하고, 이후 여섯 개 교구가 새로 출범하였다. 시기별로 살펴보면 1963년에 서울대교구에서 수원교구가, 1965년에 원주교구가 춘천교구로부터, 1966년에 마산교구가 대구대교구로부터, 1969년에 안동교구가 역시 대구대교구로부터, 1977년에 제주교구가 광주대교구로부터, 2004년에 의정부교구가 서울대교구로부터 분할 설정되었다.
이로써 2020년 현재 서울관구에는 서울대교구와 춘천·대전·인천·수원·원주·의정부·평양·함흥교구가, 대구관구에는 대구대교구와 부산·청주·마산·안동교구가, 광주관구에는 광주대교구와 전주·제주교구가 속해있다. 이외 군종교구와 덕원자치수도원구는 교황청 직속 교구이다.
한국교회의 관구 체제 출범은 정식 교계제도 설정의 결과로, 그만큼 교계제도 설정이 갖는 의미는 중요하다. 한국교회의 정식 교계제도 설정은 한국교회가 여러 측면에서 자립 능력을 갖췄다는 것을 보편교회로부터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있다. 또한 교회 내의 입법, 사법, 행정 업무와 관련된 재치권(裁治權)을 독자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도 의미한다. 실제로 교계제도 설정 후 한국교회는 지속적으로 성장 발전하여 한국의 삼대 종파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세계 교회 안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