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한국인 수녀이다. 1872년 서울 홍제동에서 순교자 집안 출신인 아버지 박순집(朴順集, 베드로)과 어머니 임 바르바라 사이에서 셋째 딸로 태어났다. 태어난 지 이틀 만인 10월 3일 세례명 글라라로 유아세례를 받았다. 수도명은 프란치스코 사베리오이다.
그녀는 순교자 집안이자 부모님의 영향으로 가톨릭 신앙에 깊은 영향을 받으며 성장해, 프랑스에서 수녀회가 진출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일찍부터 수녀가 될 결심을 하였다. 16세 때인 1888년 7월 22일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가 조선에 진출하자 다른 4명의 지원자와 한국 여성 최초로 같은 달 29일에 입회하였다.
같이 입회한 지원자 가운데 심 바르바라가 폐렴으로, 김 마리아가 폐병으로 입회 일 년 만에 선종하고, 다른 김 마리아가 귀가 후 3년 만에 다시 수도회에 복귀하였으나 1893년 선종함으로써 김 생폴(마리아) 수녀와 둘만 남게 되었다.
이후 2년 동안의 지원기 생활을 마치고, 1890년 8월 15일 나중에 들어온 4명과 함께 청원복을 받고 청원기를 시작하였다. 1894년 6월 30일 착복식을 가진 뒤에는 수련기에 들어가 1898년 8월 28일 수련을 마치고 한국인 최초로 첫 서원을 하였다. 첫 서원 후 청원기 때 1년 동안 파견 나갔던 제물포 수녀원으로 3년 동안 다시 소임을 나갔고, 여기서 지원자들을 위한 교육, 강론, 통역 임무를 맡았는데, 이는 그녀가 어학에 소질이 있어 프랑스어를 빨리 익혔던 까닭이다. 이후에는 주로 명동 본원에 머물며 서양 주방일과 통역을 병행하다 1916년 8월 24일 45세 때 종신서원 하였다.
종신서원 이후에도 이전부터 하고 있던 서양 주방일과 통역 일을 계속하였다. 그는 평소 겸손과 청빈, 극기 생활을 몸소 실천하여 후배 수녀들의 모범이 되었는데, 특히 청빈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1966년 3월 18일 95세를 일기로 선종하였다. 선종 후 샬트르 수녀원 묘지에 묻혔다가 이후 수녀원 묘지로 이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