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La Corée Libre)』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주파리위원부 통신국에서 프랑스로 발행한 월간잡지이다. 『자유한국』은 1920년 4월호부터 1921년 5월호까지 총 13호가 발행되었다. 그 가운데 제4호와 제5호, 제11·12·13호는 합집이기 때문에 책의 권수는 모두 10책이다.
1920년부터 1921년까지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는 1919년 4월 프랑스 파리에 주파리위원부를 설립하였다. 파리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강화를 위한 평화회의가 개최되고 있었다.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는 외무총장에 선임된 김규식(金奎植)을 평화회의 대한민국 위원 겸 주파리위원으로 임명하였다. 김규식은 신한청년당 대표로 그해 3월 13일 파리에 도착하였는데, 임시정부를 그를 평화회의의 대표로 임명하였던 것이다.
김규식은 파리 시내 샤토덩 거리 38번지에 파리위원부 설치하고 통신국(Bureau D'Information Coreen)을 병설하였다. 파리위원부에서는 먼저 통신국에서 그해 4월부터 유럽 언론기관에 한국독립운동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서간 형식의 「통신전(通信箋, Circulaire)」을 발행하였다. 「통신전」을 통해 파리위원부의 활동, 미주에서의 독립운동, 일제의 식민통치, 외국인이 발표한 한국관계 기사 등을 소개하였으며, 1919년 12월 15일까지 총 23호를 발행하였다. 그러나 1920년 들어 파리위원부에서는 그들의 활동을 체계적으로 알리기 위한 월간 잡지의 간행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파리위원부 통신국에서는 1920년 5월 『자유한국』을 월간으로 발행하기 시작하였다. 프랑스어로 발행하였는데, 매호 일정한 매수를 유지하지는 않았지만 30~40면 이상의 잡지였으며, 1,000부를 발행하였다. 표지에는 태극기를 그리고 ‘대한사람 대한으로’라는 표어를 적었다. 『자유한국』 제1호에 실린 「선언」이라는 창간사에, “이 월간지의 제목이 밝히는 바와 같이 우리의 투쟁 목표는 조국의 독립에 있다. 자유한국!”이라고 발행 목적을 분명히 하였다. 파리위원부 통신국에서는 『자유한국』을 통하여 한국의 현실과 문화·역사 등을 프랑스에 알리고자 하였다. 동시에 한국독립에 대한 열망도 이 잡지를 통해 밝히고자 한 것이다.
『자유한국』의 내용은 소식, 한국의 활약, 외국의 여론, 한국에 관한 참고문헌, 삽화 등의 항목 아래 필요한 기사를 게재하였다. 소식란에는 주로 일제의 외교문제나 일본군의 만행 등을 소개하고 있다. 한국의 활약이라는 주제로는 한국인의 독립운동 뿐만 아니라 일제의 박해 등도 다루고 있다. 외국의 여론과 관련해서는 대개 일본의 외교문제에 대한 외국 신문의 기사를 게재하고 있다. 한국에 관한 참고문헌에는 프랑스어나 영어 등 구미어로 저술된 서적들도 지속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따라서 『자유한국』은 대한민국임시정부 파리위원부의 활동과 유럽 외교활동을 살피는 데에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가 있다.
『자유한국』은 월간 체제를 유지하며, 결호 없이 1921년 5월호까지 발간되었으나, 마지막 호인 제11·12·13호 합집에 “조직의 재정비에 따라 『자유한국』은 새로운 규정이 도입될 때까지 격월로 발행된다”라여 재정부족으로 더 이상 발간이 어렵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