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민주화와 민족 통일을 지향하는 독일 유학생들이 만든 단체로, 독일에서 진행된 민주운동을 계승한 조직이었다.
1967년에 일어난 ‘동백림사건’ 이후에 독일의 한국 민주운동은 잠시 잠잠해졌다. 그 뒤 1974년에 민주운동 조직으로 재독민주사회건설협의회가 결성되면서 한국 민주운동은 다시 활발히 전개되었다. 곧 1974년 3월 1일에독일에 온 한국의 유학생,목사, 광부, 간호원 등은 서독의 수도 본(Bohn)의 뮌스터 광장에서 3·1절 기념식을 열고서 박정희 군부 독재와 유신 체제 타도를 외쳤다. 하지만 1978년에 통일 문제 등 북한에 대한 접근 방법의 의견 차이가 발생하여 이삼열, 이정의, 장성환 등은 따로 한국민주사회건설협의회를 만들었다. 재독민주사회건설협의회는 1984년~1985년 경부터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고, 1989년에는 이종수의 귀국, 오길남의 입북과 탈북사건 등으로 활동을 중단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에서 청년조직인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이 결성되자, 이에 고무된 독일 유학생들은 1984년 11월에 비공개 학술운동인 ‘사회과학세미나’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 비공개·반합법 단체로 재유럽민주청년연합(JUKO)을 조직하였다.
이 단체는 한국의 민주화와 민족 통일을 지향하는 독일의 한국 유학생과 한인 2세로 구성되었다. 특히 유학생들은 대체로 40세 이하로 유럽의 여러 대학에 재학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프랑스 파리의 홍세화, 독일 보훔(Bochum)의 최종욱, 마르부르크(Marburg)의 정범구와 이영, 기센(Giessen)의 박상환 등이 임원을 맡았다. 단체는 다음과 같이 5가지 강령을 정하였다.
첫째, 우리는 민중에 의한 조국의 민주화와 평화적이고 자주적인 민족 통일을 지향한다. 둘째, 우리는 민주화와 민족 통일을 염원하며 투쟁하는 국내의 동포와 연대한다. 셋째, 우리는 민주화와 민족 통일을 염원하며 투쟁하는 해외동포와 이를 지지하는 외국인 민주단체 및 개인들과의 연대를 통해 해외운동을 활성화시키고 역량을 강화한다. 넷째, 우리는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 반전반핵평화운동 및 환경보호운동과의 폭넓은 연대를 통해 바른 국제평화질서의 수립에 이바지한다. 다섯째, 우리는 유럽 내 동포들의 권익옹호와 2세에 대한 민족교육 실시 및 청년들의 의식화 작업에 노력한다.
이 단체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 이후에 여러 지역을 돌아가면서 기념식을 거행하고 한국 문제를 토론하는 사회과학세미나를 열었다. 또한 국내외 단체와 교류하면서 정보와 자료의 교환·수집·분석·평가, 학술토론, 번역·출판·홍보, 한인 2세에 대한 민족 교육 등을 실시하였다.
유럽 운동 단체에 편입한 일부 회원들을 제외하고는 회원 대부분이 유학생들로 학업에 전념하게 되면서 1986년에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