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0년(영조 6)에 창건한 향현사(鄕賢祠)에서 출발하여 1740년(영조 16)에 서원으로 발전하였으며, 노곡(老谷) 유동수(柳東秀, 1579∼1654)를 제향하고 있다. 2001년 1월 3일에 부여군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었다.
1730년에 양호(兩湖)의 사림(士林)이 조선 후기의 문신이었던 유동수를 기리는 향현사를 창건하여 제향하였다. 1732년(영조 8)에 사당의 이름을 창의사(倡義祠)라고 개칭하였고, 1740년에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1859년(철종 10)에 사액을 청하였으나 받지 못하였고, 1868년(고종 5)에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1969년 옛터에 사우와 서원을 복원하였다.
유동수는 1646년(인조 24)에 안익신(安益信)·유탁(柳濯) 등이 난을 일으켰을 때 이산현감(尼山縣監)으로서 이 사실을 미리 조정에 고발한 공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이 해 11월에 공보다 죄가 있다고 체포되어 부안으로 정배되고 다시 경성으로 이배되었으나 그 뒤 관직이 회복되었고, 1649년 천안군수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간곡이라는 명칭은 당시 이곳에 위치한 간은곡(艮隱谷, 일명 細洞)이라는 마을의 명칭에서 연유한 것이다. 서원에는 1975년 성구용(成九鏞)이 서(書)하고, 조남복(趙南福)이 발(跋)을 한 『간곡서원지(艮谷書院誌)』를 비롯하여, 『노곡가장(老谷家狀)』, 『간곡서원사례(艮谷書院事例)』 등이 보관되어 있다.
또 서원에는 1971년에 유인봉(柳寅鳳)이 기(記)한 ‘간곡서원중건기’와 1950년에 송두헌(宋斗憲)이 기한 ‘간곡단소기(艮谷壇所記)’가 걸려있다. 사우의 앞에는 송재성(宋在晟)이 찬하고 후손 유희열(柳熹烈)이 서한 원정비가 있다. 향사일은 음력 2월·8월 하정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