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암서원 ()

유적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공음면에 있는 조선후기 김질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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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공음면에 있는 조선후기 김질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개설

1613년(광해군 5)에 향중 유림이 김질(金質, 1496∼1555)의 효성과 학문을 기리어 그가 살던 집터인 영모당(永慕堂)에 사우를 세우고 배향하였는데, 후에 서원으로 발전하였다. 2005년 6월 17일에 고창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역사적 변천

1613년(광해군 5)에 김질을 기리어 사우를 세우고 존향해 오다가, 1835년(헌종 1)에 정유재란과 이괄의 난 때에 의병을 일으킨 증손 은송당(蘟松堂) 김경철(金景哲)을 추배하였다. 1857년(철종 8)에는 김경철의 아우로 병자호란 때에 의병을 일으킨 현무재(賢武齋) 김익철(金益哲)을 추배하였다. 1868년(고종 5)에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46년에 후손들이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내용

김질은 조선 전기의 학자로 본관은 안동이며 호는 영모당(永慕堂)이다. 효심이 지극하여 조부모와 양친을 지성으로 섬겼으며 상중에 치성을 다하였다. 기대승(奇大升)과 양응정(楊應鼎)이 매번 김질을 추중(推重)하여 “김공을 보지 않았으면 누가 50세에도 부모를 사모했음을 알았으리요. 공(公)같은 분은 진실로 당(堂) 이름에 부끄럽지 않다.”라고 했다. 김질은 48세에 모친상을 당하여서 부친상과 조모부상처럼 한결같이 치성을 드렸고, 후에 효자 정려(旌閭)를 받았다.

서원 초입에는 하마비와 홍살문이 있고, 강당인 영모당, 정려각, 김질의 사우인 도암사(道巖祠)가 있다. 도암사 뒤 현충문 안에 김질의 6대조인 김사형(金士衡, 1341∼1407)의 부조묘(不祧廟)가 배치되어 있다. 향사일은 음력 2월 14일이다.

의의와 평가

김질은 조정 및 중국에 잘 알려진 대효(大孝)일 뿐만 아니라 충(忠)을 겸하여 녹권(錄券)을 보관한 봉안각(奉安閣)이 세워졌다. 영모당, 정려, 봉안각 모두 역사가 오래되었으며, 봉안각의 녹권함과 하마비는 고창지역에서 유일한 유물로 국가유산의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

『유교대사전』(유교사전편찬위원회, 1990)
『전북향교원우대관』(전라북도향교재단, 1984)
『문화유적총람』(문화재관리국, 1977)
고창군 문화관광(culture.gochang.go.kr)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www.grandcultur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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