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4년(순조 14)에 조구령(曺九齡, 1657∼1719)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서원이다. 1868년(고종 5)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이후 다시 복설되지 못하고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조구령은 조선 후기 유학자로 자는 인수(仁叟)이고 호는 정옹(酊翁)이다.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퇴계학파의 학파적 정체성을 본격적으로 제창한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1627∼1704)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벼슬길에 뜻을 두지 않아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학문과 자기 수양에만 전념하였다. 학문과 덕행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사림들로부터 존경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