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공(忠定公) 이귀(李貴, 1557∼1633)와 그의 세 아들인 충익공(忠翼公) 이시백(李時白, 1581∼1660), 사우당(四友堂) 이시담(李時聃, 1584∼1665), 충정공(忠靖公) 이시방(李時昉, 1594∼1660)을 배향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공주시 이인면 만수리 괘성산(掛城山) 능선에 위치한 이귀의 묘 근처에 이귀와 그의 세 아들을 배향하기 위해 성봉서사(盛峰書社)를 세우고 존향하였다. 이후 1871(고종 8)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어 복설되지 못하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귀는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문명을 떨쳤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삼도소모관(三道召募官)에 임명되어 군사를 모집하여 이천으로 가서 세자를 도와 흩어진 민심을 수습하는 등 국난 극복에 헌신하였다. 이후 광해군의 난정을 개탄하여 김류(金瑬), 신경진(申景禛) 및 두 아들 시백 · 시방 등과 함께 인조반정에 참여하고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에 봉해졌다. 저서에는 『묵재일기(默齋日記)』 등이 있다.
인근에 위치한 이귀의 묘는 2010년 12월 30일에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연평부원군신도비(延平府院君神道碑)는 1979년 12월 19일에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