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義天)은 고려 제12대 국왕 문종과 인주 이씨 인예왕후의 넷째 아들로 1055년 9월 28일에 출생하였다. 의천은 11세에 화엄종의 난원에게 출가하여 화엄교학을 중심으로 불교의 대 · 소승 교학을 수학하였다. 의천은 출가 이후 불교학을 배우고 강론하면서 고려에 대장경의 경론(經論)은 갖추어져 있으나 이를 해석한 소초(疏鈔)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아 교법을 바로 펼 수 없음을 인식하였다. 이에 의천은 고려에 전존하고 있는 장소(章疏)와 송(宋) · 요(遼)의 신 · 구 장소를 모아 이를 일장(一藏)으로 조성코자 하였다. 의천은 1085년부터 1086년까지 14개월여의 입송 구법을 마치고 장소 3천여 권을 수집하여 귀국한 뒤, 흥왕사에 교장도감을 설치하고 국가적 사업으로 제종의 교장을 간행하여 유통시켰다.
한편, 의천은 화엄종을 중심으로 천태종을 개창하였는데, 1097년(숙종 2) 5월에는 천태종의 본산인 국청사가 완공되자 천태교관을 강의하였다. 의천은 1101년(숙종 6) 2월에 천태종의 승과를 실시해서 40명을 선발하는 등 천태종의 개창과 발전에 힘썼다. 의천의 활동은 불교를 넘어서 국가적 사업까지 확장하였는데, 지남관(指南館), 겸제원(兼濟院)을 복구하여 백성의 편익을 도모하였고, 국가의 중대사를 자문하였으며, 주1을 건의하여 시행하는 등 숙종의 개혁 정치에 조력하였다. 의천은 1101년 10월 지병으로 총지사에서 입적하였다. 의천의 편찬 및 저술로는 주2,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 『석원사림(釋苑詞林)』, 『성유식론단과(成唯識論單科)』 등이 있다.
「팔사경후서(八師經後序)」는 『불설팔사경(佛說八師經)』의 간행 혹은 필사에 즈음하여 그 경위를 서술하여 경전의 말미에 둔 후서(後序) 혹은 발문에 해당한다. 이 후서와 관련한 『불설팔사경』의 고려 전기 필사나 간행의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대각국사문집』 권제1의 권수 목록에는 ‘서序’라는 제목 아래 「신집원종문류서(新集圓宗文類序)」, 「신편제종교장총록서(新編諸宗敎藏摠錄序)」, 「간정성유식론단과서(刊定成唯識論單科序)」, 「팔사경후서(八師經後序)」, 「소재경직석상정기(消災經直釋詳定記)」가 기록되어 있다.
「팔사경후서」는 의천이 지은 것으로 의천의 『대각국사문집』권제1에 그 제목만이 수록되어 있다. 관련 자료나 기록이 전하지 않기 때문에 상세한 찬술 경위는 미상이다. 『불설팔사경』은 오(吳)나라 월지국 출신 거사 지겸(支謙)이 223년에서 253년 사이에 한역하였으며, 『역대삼보기』 이래 한문 대장경에 입장되었다. 고려 전기 의천의 활동 시기인 11세기에는 송의 『개보대장경』과 고려 『초조대장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의천은 『불설팔사경』을 단행본으로 간행하거나 혹은 필사하면서 경전의 마지막에 그 경위를 서술한 후서를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 대장경 입장본 이외 『팔사경』의 유통본은 확인되지 않는다.
「팔사경후서」의 찬술 시기 및 내용은 미상이다. 『불설팔사경』은 불분권 5장(張)의 짧은 경전이다. 이 경은 주3 · 주4 · 사음 · 주5 · 음주의 5계와 노 · 병 · 사 등 세 가지 고통이 깨달음을 얻는 스승이 된다는 내용이다.
본 후서는 「팔사경후서』라는 제목만이 확인되지만, 고려 전기에 『불설팔사경』의 대장경 입장본 이외 별행본의 간행과 유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본서와 관련하여 중국 산서성 응현목탑문물보관소에 소장된 요대 간행본 『불설팔사경』과 『팔사경보응기(八師經報應記)』가 주목되는데, 고려 전래는 확인되지 않는다. 『불설팔사경』의 주석서는 확인되지 않는데, 요대에는 응험기의 일종인 『팔사경보응기』가 편찬되었다. 중국 산서성 응현목탑문물보관소에 소장된 『팔사경보응기』는 요대 간행본으로 현전하는 국내외 유일본이라는 점에서 불교문헌학적 의의가 있다.